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결투 (문단 편집) == 방식 ==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여길 때 [[장갑]]([[건틀릿]])으로 [[얼굴]]을 [[싸대기|치거나]] 장갑을 벗어 상대에게 던지는 것으로 결투를 신청한다. 이것은 중세시대 [[기사(역사)|기사]] 서임식에서 기사가 되는 청년의 얼굴을 치는 [[종교]]적 의식에서 유래했다고 추측한다. 기사처럼 결투에 응하라는 의미다. 과거 유럽권 귀족 남성들의 주요 매너 중 하나가 장갑으로 손을 가리고 다니는 것이라 대부분의 경우에는 장갑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근대화되면서 장갑을 내던지는 것보다는 초청장(?)에 가까운 결투장을 만들어 보내서 결투 방식, 규칙, 입회인 등을 결정했다. 결투시 [[무기]]로 [[검]]이나 [[총]] 중 무엇을 쓸 것인가 혹은 규칙은 언제까지, 즉 피를 흘릴 때까지 혹은 죽을 때까지 결투를 할 것인가, 따위를 합의했다. 중세에서 멀어질수록 진짜로 죽을 때까지 결투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중세에서 좀 격식있는 결투가 되면 [[캐삭빵|누군가는 '''죽어서''' 실려나가야 하니]] 양자 모두 [[관짝]]과 그 위에 덮을 천을 준비해야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투는 모욕한 사람이나 모욕당한 사람 모두 같은 신분이어야 이루어졌다. [[신사]]가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 모욕당했을 때는 결투를 할 필요 없이 하인을 시켜서 패면 그만이었다.[* [[남북전쟁]] 직전 노예제 폐지론자 찰스 섬너 상원의원이 프레스턴 브룩스 하원의원의 친척을 포함한 남부 정치 지도자들을 모욕했다가 브룩스 의원에게 지팡이로 구타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 브룩스 의원은 처음에는 결투를 생각했지만, 섬너 의원이 신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질이 떨어지는 말을 해서 그냥 줘패기로 한 것이다.] 한편 당시 예절에서는 신사가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고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하거나 결투를 신청하'''지 않'''는 것이 [[병신]]으로 몰리는 지름길이었다는 풍습도 있다. 중세 시대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농노]]와 자유민 사이의 결투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결투를 위해 영주가 일시적으로 농노를 자유민으로 신분 상승을 시켜주는 경우는 있었다. 또 양쪽 모두가 결투를 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성립이 되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에게 모욕당했을 경우는 보통 [[대전사#s-2|대리인]][* 여성 외에 노인, 어린이, 장애인, 환자 등도 대리인을 고용해 결투를 할 수 있었다.][* [[챔피언]]이란 단어는 원래 결투의 대리인을 의미하는 단어였다.]을 시켜서 결투를 하지만, 굳이 여성 본인이 결투를 하고 싶다고 할 경우에는 남자에게 몇 가지 페널티를 주고 결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투 시 여성 VS 남성의 경우 남성 쪽이 페널티를 받고 결투를 했지만 여성 VS 여성일 경우 서로 페널티나 메리트가 없는 대등한 처지에서 동일한 무기를 들고 싸우기도 했다.] 일례로 구덩이를 파놓고 남자는 들어가 머리와 팔만 내놓고 싸운다든가 하는 방식을 썼다. 결투에 총을 쓰는 경우에는 여자라고 총을 못 쏘는 게 아니니 그런 핸디캡도 없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모든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었지만, 새뮤얼 콜트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대신 여성이 상대라면 남성 쪽에서 결투 전까지 여성이 사격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 정도는 주는 게 예의였다. 결투는 새벽에 하는 경우가 보통[* [[앰브로스 비어스]]도 단편 소설 <왼발 셋째 발가락>이란 작품에선 신사도라는 이름으로 새벽에 결투를 벌이는 것을 깠다. 젊은 신사들이 무뚝뚝하게 앉아있던 중년 신사에게 "당신은 여기 있을 자격이 없어보이는데?" 라는 말 한마디 한 것에 "나도 신사이니 가만히 둘 수 없다. 결투다"라고 하여 입회인이 보는 가운데 새벽에 유령의 집이라고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은 집에선 칼로 대결을 벌이는 묘사가 나온다.]이고 아침이나 오후의 결투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양쪽이 모두 신뢰하는 입회자로 하여금 장소나 결투할 무기를 선택하게 한다. 일반적인 결투의 과정은 이렇다. 먼저 결투를 신청한다면 양측 모두 입회인을 세워야 하는데, 입회인들은 대부분 이런 결투를 참관한 적이 많고 둘의 관계를 잘 아는 연장자가 선발되었다. 이들은 결투 전에 참가자들과 대화해서 분노의 수준, 복수의 정도, 그리고 이 사람들의 사격이나 검술 실력을 확인하고 무기를 결정해 줬다. 결투의 시간과 장소, 방법은 주로 결투를 신청받은 사람이 정했는데,[* 다만 최근 창작물 속 결투 장면 등을 보면 오히려 결투를 신청한 쪽이 시간, 장소, 방법을 모두 결투장에 적어 상대방에게 도전할 때 한 번에 언급하기도 한다.] 상대를 죽일 의사가 없는 상황이면 시간을 조금 여유있게 둬서 상대의 분노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둘이서 확실히 서로를 죽일 생각이면 바로 다음 날 오전이 결투 시간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강하다면 칼을 썼고, 상처를 입힐 생각이 없으면 총, 진짜 서로 죽일 생각이면 결투 참가자들이 더 능숙한 무기를 골랐다. 입회인들 중 일부는 무기 선택권을 이용, 위에서 언급한 별의별 무기들을 제시해 원치 않는 결투를 당사자들 체면도 살리면서 중단시키기도 했다. 총의 경우 새벽녘 입회자가 지정한 공터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가 입회자가 사격 표시를 하면 등을 돌리고 발사한다. 서로를 죽이려는 의사가 강한 경우 당연히 동시에 총을 쐈다. 이러면 당연히 사격 실력과 손이 빠른 사람이 이겼다, 흔히 보는 서부극에서 많이 나오는 방식이다. 하지만 보다 주로 유럽에서 이뤄진 전통적인 결투에서는 한 발씩 돌아가면서 사격했는데, 우선권은 결투를 신청받은 사람이 가졌다. 일단 처음 한 발 발사 후, 아무리 사소한 상처를 입었더라도 모욕당한 측이 자존심이 회복되었다고 만족하면 결투가 끝나지만, 반대로 어느 한쪽이 결투를 계속하지 못할 정도로 다칠 때까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계속할 수도 있었다. 다만 3발 이상 교환했는데도 결투를 계속하겠다고 하는 것은 야만적으로 보았다. 피를 보는 것보다는 모욕당한 쪽이 명예를 충족하고, 희생 없이 끝내는 것을 최우선의 결투로 쳤다. 첫 사격이 끝나고 결투를 신청한 사람이 아직 살아있다면 지향사격을 받았을 때 그 역시 복수를 하기 위해 사격하는 것이고, 상대가 허공에 쐈다면 결투 신청자는 아무리 상대를 죽이고 싶더라도 지향사격을 하면 매너가 없는 야만인 취급을 받았다. 검으로 결투를 할 경우에는 근대의 경우 입회자가 칼을 땅에 꽂는 것과 손수건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을 알린다. 중세의 결투는 그냥 평복으로 하는 경우와 갑주를 입고 하는 경우 모두 있는데, 특이하게 [[젠타이|전신 타이츠]] 비슷한 결투복을 입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옷깃이나 머리카락이 붙잡히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한 복장으로, 생사결로서의 결투를 진지하게 파고든 사례. 무구는 양자 합의 하에 대등한 무장을 가지고 하는데, 양손검, 검과 방패, 검과 곤봉 등 양쪽이 같은 무장을 지닌다. 단검 소지 여부도 합의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싸우다가 드잡이질 간격에 들어가면 단검으로 찔러죽이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기 때문. 갑주 대결은 당연히 갑주를 소지할 만한 계급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편이다. 총으로 할 경우는 별다른 방호구 없는 평복으로 하거나, 탄에 맞아 옷 조각이 총알과 함께 몸으로 들어가 곪는 것을 막기 위해 상의를 완전히 벗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결투에 관해 [[실크]] 재질 옷과 관련된 말이 있다. 결투에서 칼을 쓸 때 다른 옷은 손상되면서 몸에 파고들지만, 실크는 자기만 깨끗히 잘리고 몸에 파고들지 않는다고 [[카더라]]. 그러나 실크 옷은 결투를 주로 하는 상류계층도 막 입기엔 비싼 옷이긴 했다. 그리고 앞 서술에서 아예 결투하다 다쳐서 입던 옷이 파고들지 않게 상의탈의로 결투한 내용이 언급되었으므로 실크 옷이 결투 시에 그렇게까지 다른 재질 옷들에 비해 안전했다고 확정하긴 힘들다.] 일각에서는 결투의 존재로 인해 서양에서 소위 [[에티켓]]으로 불리는 예절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형법]]에서 말하는 위법성 조각 사유 중 [[정당방위]]의 유래가 이 결투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결투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박게 되기는 한다. 가혹행위를 하면서 인격 모욕을 주다가는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난 더 바바리안|코난]]이 "문명인들은 예의없는 말을 해도 머리가 쪼개지지 않기 때문에 야만인보다 더 무례하다."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결투 문화가 [[프로]]스포츠 문화의 탄생에도 기여했다.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역시 [[권투]]. 근대 시대에는 스포츠와 같은 개념으로로 검술과 사격 대회가 성행했고, 지역마다 챔피언이 있었다. 간혹 누가 이 챔피언 급 실력자들과 결투를 하게 되었는데 이 챔피언 급인 상대와 진짜로 싸울 생각이 없다면 상대가 능숙한 종목을 선택했다. 이 경우 이 분야의 챔피언 급인 사람은 결투를 신청하는 상태이건, 받는 상태이건, 상대를 총이나 칼로 죽이고 싶도록 열받아도 챔피언의 체면 때문에 제 실력을 다해 아마추어를 상대할 수 없었다. 결국 상대가 쏘는 헛방을 보고 억지로 웃으면서 용서해 주고, 챔피언답게 한수 가르쳐주면서 훈훈히 넘어갈 수밖에... 결국 이런 고수들이 상대를 죽이지도 못하지만 패고는 싶을 때 대안으로 택한 게 [[권투]]이다. 권투는 스포츠로 여겨져서 대결해서 패한다고 해도 아주 운이 없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죽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상대가 아마추어라고 마구 두들겨 팬다고 비난받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 이래서 한국이나 동남아, 멕시코 등에서 권투가 출세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인식되는 것과는 별개로, 유럽에서의 복싱은 원래 귀족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출발했다. 프로화가 되면서 신체능력이 좋고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드는 스포츠로 바뀌긴 했지만. 과거의 결투 문화 또한 현대 격투기에도 많이 남아 있다. 비교해 보자면 >도전자가 모두가 볼 수 있는 오픈된 장소에게 상대에게 장갑을 얼굴에 던져서 도발하며 결투를 신청한다. 이후 양측이 같은 수의 입회인을 선정하고, 그 중 가장 연장자가 책임 입회자가 된다. 도전을 받은 자가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격투의 룰을 정해서 알려주면 도전자가 받아들인다. 룰의 해석이 미묘하면 결투 신청을 받아 주는 자에게 우선권을 준다. 결투를 시작하기전 책임 입회자가 룰을 설명해 준다. 그 룰을 따르지 않고 이기면 불명예스러운 거라 여겨져서 사람 취급 안 해준다. 서로 룰을 지키며 3번 정도 서로 공격하다 서로 죽이는 데 실패하면 결투를 그만두며, 의사가 대기하고 있다가 치료를 해준다. 서로 죽지 않은 경우 서로가 격려해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난다. 결투의 분위기에 따라 많이 다르긴 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거리가 싸움구경인지라 구경꾼이 붙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 결투한 상대와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다시는 결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전문적으로 수십 번을 결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전자가 공개적으로 챔피언을 도발해 타이틀전을 신청한다. 이후 심판과 심사위원이 선임되며, 심판책임자가 선정된다. 도전 받은 챔피언에게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권한이 있었다. 80년대까지는 복싱에도 챔피언의 홈 어드벤티지가 꽤 있었다.[* 현재는 방송판권과 티켓 판매 수입을 고려해 결정한다. [[파퀴아오]] 같은 경우도 라스베가스에서 대부분 경기하거나, 필리핀에서 해도 시간을 엄한 시간에 해서 미국 방송시간을 맞춰 주거나 했다. 격투의 룰은 협회의 기본 룰을 따르지만 일부 룰은 챔피언이 고를 수 있었다. 지금은 복싱룰이 무조건 국제룰을 따르지만 예전엔 어느 정도 재량권이 있었다. 대표적인 게 4전 5기로 승리한 [[홍수환]], 챔피언이 사전에 1라운드 3번 다운당하면 [[KO]]당하는 기본 룰을 없앤 덕에 우승했다.] 도전자는 이 룰을 받아들인다. 룰이나 판정의 해석이 미묘하면 챔피언에게 우선권을 준다. 경기 시작 전 심판이 룰을 다시 설명해 준다. 룰을 어겨서 이겨도 비신사적이라며 징계를 받거나 여론의 비난을 받는다. 경기엔 라운드가 있으며 라운드가 끝나면 경기도 끝난다. 판정승으로 끝나거나 넉다운당한 경우도 서로 격려해주는 분위기로 끝나는 경우가 99%이다. 구경꾼은 아예 수만 단위로 모이며, 한번 싸운 상대와 다시 싸우는 경우는 리벤지 매치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이들은 당연히 수십 번을 경기한 프로 선수들이다. 1과 2가 단어만 바꾸면 거의 비슷하지 않는가? 결투에서 살의를 제거하고, 전문 경기장과 관객을 추가하면 현대의 프로 격투기와 놀랍도록 가깝다. 여담으로 결투의 결과는 도전자와 도전에 응한 자의 승률을 비교하자면 주로 도전자의 승률이 도전에 응한 자보다 더 높다고 한다. 아무래도 본인이 결투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고 도전에 응한 자보다 심리적 부담이 덜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결투에 임하면 그만큼 기세가 등등해진다는 심리적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인 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