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대승 (문단 편집) ==== 정치력 부재 ==== 사실 경대승은 간신배들을 없애버리겠다는 혈기 하나만을 내세워 젊은 나이에 권력을 손아귀에 넣었지만, 거사가 성공한 이후부턴 무신정변 이전으로의 복귀라는[* 만약 [[이의민]]이 의종을 시해하지 않았더라면 실제 경대승은 '''의종을 복위'''시켰을지도 모른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일종의 복고주의 외에는 딱히 어떤 정치적 비전이나 소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제로 그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던 큰 정책은 무신정변 이후 극도로 세가 약화되있던 문신들을 우대해주는 정책 등 몇 개 뿐이었다. 다만, 이에 대해서 경대승은 평생 조정에 출사한 바가 없었고, 집권하자마자 곧바로 군부에서도 사직하고 떠나버렸으며 이후 고작 4년 여 간의 집권기 동안도 딱히 무슨 일을 하지도 않았고 몇 차례 왕에게 찾아가 간언을 했다는 기록만 남았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애초에 정치적인 소신이 담백했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인 권력욕이 없었던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본인의 역할은 왕과 문신들이 나라를 잘 이끌게 토대를 지키는 것일 뿐이라고 인식했을 수도 있다는 것. 또 다르게 보면, 요절해서 명확히 알 길은 없지만 경대승 역시 장기집권했다면 나이를 먹으면서 학식도 쌓고 본인 만의 정치적 비전을 보여줬을지도 모르는 일. 사실 무신정변을 통해 고려 제1의 정치 기구로 부상할 만큼 권위가 높아진 중방을 제대로 구슬리지 못한 것 역시 경대승 입장에선 심각한 패착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 중방은 무신정변에 참가하거나 동조한 고위급 무신들의 합좌기구라서 권위 뿐 아니라 군사 관련 실권도 여기를 통해 나오다 보니 함부로 중방을 건드렸다간 순식간에 [[다굴]] 당해서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 무신정변의 3두 중 이고가 이의방에게 살해당해 살얼음처럼 유지되던 균형이 깨져버린 상황에서도 이의방이나[* 이쪽은 중방의 수장인 정중부가 최대 정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때로는 힘을 빌리기도 했으나 평상시엔 서로 정적이었으며, 이의방이 알아서 중방을 존중한 것은 아니었다.] 정중부가[* 이 쪽은 중방의 수장이며 애초에 지지층이 중방의 원로들이었다.] 중방을 차마 깔아 뭉개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 것. 오히려 어떨 땐 중방이 이들의 권력을 견제할만큼 입김이 강하기도 했는데, 이는 무신정변의 주도 세력이 이의방과 이고로 대표되는 군부 내 신진 세력이었고, 여기에 원로인 정중부를 얼굴 마담으로 끌어들인 구도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의방과 이고 역시 군부 내 원로들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고, 이들 원로들은 중방이라는 형태로 애송이인 이의방과 이고, 그리고 일단은 자기들 중 리더격이기는 해도 '''동료'''에 불과한 정중부를 적절히 견제했던 것이다. 또한 정중부도 자신의 '''지지 세력'''인 중방을 그만큼 대우해주고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무인시대>에서는 정중부가 중방의 수장으로서 원로격의 대표로 그려졌다. 이의방이 철퇴를 마구 휘두르니 정중부가 "그래, 어디 우리 다 죽이고 너 혼자서 다 해먹어 봐!"라고 강경하게 나왔으며, 이의방이 이를 갈면서도 철퇴를 내리는 모습으로 이의방 정권과 군부 내 원로들로 이루어진 중방 세력의 대립과 견제가 잘 묘사되었다.] 실제 정중부 집권시엔 무인시대에서도 중방과 정중부의 대립이 별로 나오지 않고, 정중부가 문하시중에 올라 조정의 영수가 되었음에도 정중부가 알아서 조정이 아닌 중방을 존중하며 중방에서 결정을 내리자는 식으로 나온다.[* 그나마 정중부 정권에서 중방에서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응양군 상장군인 조원정이 자신이 중방의 수장인데도 용호군 대장군인 정균의 권세에 눌려서 2인자 신세인 것에 내심 불만이라서 정균이 조정에 출사한다는 것에 이제 자신이 중방의 주인이라며 기뻐하는 식이다. 이것도 조원정이 표면적으로 정균에게 대항하지 않았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그냥 조원정이 속으로만 불만을 품으면서 '제발 좀 빨리 조정으로 가버려라.' 라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경대승이 정중부와 그 일파를 싸그리 제거한 후 집권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방의 수장과 원로를 모두 죽여 중방은 경대승을 적대시하게 되었으니, 정치 현실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경대승은 송유인이 한문준과 문극겸을 탄핵한 일로 문신들과 사이가 벌어진 틈을 노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단 정중부가 은퇴해 물러나고, 정균과 송유인이 독점했으나 중방에서는 다수를 포용하던 정중부와 다른 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정중부는 오랜 세월 중방의 수장으로 군림하기라도 했었지만, 정균과 송유인은 정중부만한 중방 내 위상이 없었다.] 경대승 사후 [[이의민]] 집권 전까지의 공백 기간 동안 중방의 중요 인사였던 조원정은 명종이 이의민을 상경시켜 집권시키려고 하자 이에 반기를 들며 군대를 동원하였고, 이것이 실패하여 처형되었는데, 당시 조원정이 중방에서 차지하던 위치[* '응양군 상장군'으로 정중부 이후 중방의 수장이었다.]를 감안해 본다면 [[탄핵]] 같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반란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할 정도로 이 당시 중방의 힘이 무척 약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전 중방을 이끌던 자들에 비해 인물 자체의 부실함도 있긴 했겠지만 말이다. 경대승이 주도한 중방 무력화 정책에 맞서 무장들의 극심한 반발이 일어났고, 경대승은 이를 타개하고자 반대파에 대한 탄압과 함께 문신들을 적극 등용하고 또한 친위대인 도방을 설치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자신은 일평생 출사를 안하고 청렴 결백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친위대인 도방의 권력이 커짐에 따라 심각한 부패를 가져왔다. 이쯤 되면 중방 무신들의 부패를 가지고 경대승이 지적하여 거병한 명분도 자연스레 힘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 게다가 애초에 경대승이 복귀시키려 한 무신정권 이전의 문벌귀족들 역시 상당수는 부패하기 매한가지였고, 무신정권 이후 문신들은 무신들과의 통혼을 통해 목숨줄을 연명해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대승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정중부 가문 덕에 뒷배를 채웠던 상당수 [[탐관오리]]들을 제대로 척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특히 공포정치 속에서도 경대승은 조원정은 물론이고 최세보, [[이광정]], 정세유, 석린, [[이영진]], 그리고 본인이 척결하겠다고 다짐한 [[이의민]]도 결국 제거하지 못했다. 덕분에 경대승 사후에도 조정 탐관오리들의 횡포는 지속되었고, 특히 석린은 명종에게 대드는 짓도 저지르며[* 본인 맘에 들지 않자 명종 앞에서 복두를 던져버리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무신정권 이전이라면 목이 날아갈 행위다.] 고려 왕실의 권위까지 대폭 깎아먹었다. 다만 이건 경대승의 입지가 그만큼 불안했다는 방증이기도 한데 조원정, 정세유 등 무신들은 난신이기 이전에 고려군 내에서 명망이 높은 장군들이었기 때문에 정중부 세력을 망설임 없이 없앤 경대승조차 함부로 건드리기가 쉽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군부 내 반란이 우려되어 정중부 일가만 몰락시킨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될 정도. 그리고 이들은 훗날 경대승의 사례를 상당 부분 참조한 최충헌에 의해 대부분 제거된다.[* 최충헌이 이들 모두를 합친 것 못지 않은 부정부패를 저지르게 되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