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대승 (문단 편집) ==== 사병의 부활 ==== 도방 이전 무신들의 [[사병]]들은 대체로 용사, 장사 혹은 무뢰배 등으로 불리는 등 고용인들의 목적에 의해 임시적으로 모인 비공식적인 집단이거나[* 특히 [[승려]]들이 많이 동원되었다.]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을 무장시켜 동원하는 등의 [[아마추어]]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경대승의 도방은 체계적으로 전투 [[훈련]]을 받아 오로지 경대승의 [[호위]]만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앞의 경우와는 달리 오히려 [[신라]] 말기 [[진골]]들간의 [[왕위]] 쟁탈전에서 동원된 사병 집단들과 그 [[성격]]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본다면 이는 거의 300년 만의 사병 부활이다.] 이들은 경대승의 호위만을 담당하지는 않고 [[첩보]] 및 반대파 제거에도 동원되었다. 경대승의 도방 조직은 창설에 대한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불법]]적 군 내 사조직이었으며, 그 숫자는 100여 명에 지나지 않는 소규모였던 것으로 보이나 전례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경대승은 후대의 [[최충헌]]이 이름도 바꾸지 않고 도방을 재창설, [[최우]] 대에는 확장 및 재편되어 [[삼별초]]라는 정규군의 전투력을 뛰어넘는 사병 집단이 탄생하는데 간접적으로나마 일조했다는 책임을 피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도방은 이후 4대 60년 간 이어지는 최씨 [[정권]]의 핵심 [[권력]] 기반이 되었고, 삼별초는 정규군의 질적 하락 및 지휘 체계의 문제를 불러와 [[대몽항쟁]]에서 정규군이 제대로 된 방어 전략 대신 임기응변으로만 대응하다 각개격파당하는 결과에 크게 기여했는데 이는 경대승의 책임도 분명히 있는 부분. 특히 사병은 이들이 중앙 정부가 아닌 사병을 보유하고 있는 [[주군]]과 그 집안에게만 [[충성]]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집단인데 중앙 정부가 사병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나라]] 전체가 박살이 나버린 신라 말기 상황을 보면 그 위험성이 입증된다.[* [[한국]] 밖으로 눈을 돌려도 사병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 나라 전체가 공중분해된 사례는 많다.] 특히 경대승처럼 [[지방(지리)|지방]]도 아닌 [[수도(행정구역)|수도]]에 버젓이 불법적 군사 사조직을 창설했다는 점은 [[명종(고려)|명종]] 입장에서 보면 대놓고 [[어그로]]라 불쾌함을 넘어 위협을 느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경대승은 [[국가]]의 중요 [[정책]]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궁]]에 출입하여 명종에게 자신의 생각을 간했다고 하는데, 경대승 본인이야 충정으로 그랬다고 할 것이고 실제로도 그럴 개연성은 있으나, 명종 입장에서 보고말고를 떠나 제3자가 보기에도 이건 [[관직]]도 박차고 나간 자가 본인의 사병 집단을 믿고 왕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들 100여 명의 적은 숫자로 [[만월대]] 공격은 무리겠으나 왕궁 밖에서 사는 대신들에 대한 위협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며 어디까지나 당시만 해도 이들의 창설 목적은 경대승의 호위였겠지만, 이후 [[약탈]]로 변질되는 마당에 명종과 대신들의 입장에서는 [[정적]] 제거를 위해 창설했다고 볼 여지도 충분히 있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경대승 사후 이 도방 조직원들이 명종이 보낸 중앙군에 의해 박살난 것도 명종의 경대승에 대한 [[감정]]도 있었겠으나 그보다는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따르지 않는 불법적인 군사 사조직이 수도에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명종이 경대승과 도방에 대해 느낀 위협은 경대승 사후 [[이의민]]을 상경시켜 집권시키고 [[두경승]]에게 이의민과 맞먹는 권한을 주어 서로 견제하는 연립 정권을 수립한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당시 조정의 대신들은 경대승이 주장하던 [[무신정변]] 이전으로의 복귀를 대놓고 지지하거나 동조하던 상황이라서 무신정변으로 옹립된 명종 본인의 입장에서는 조정의 대신들을 도저히 국정 [[파트너]]로 삼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들 사병 집단의 성격을 넘어 도방 조직원 개개인의 [[일탈]]도 문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