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복궁/건축물 (문단 편집) === 건청궁 권역 === || {{{#gold ''' 사진 '''}}} || {{{#gold ''' 설명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cha.go.kr/1624521.jpg|width=100%]]}}} ||'''[[경복궁 건청궁#s-3.1|장안당(長安堂)]]'''[br]건청궁은 1873년(고종 10년) 경복궁 중건이 끝난 뒤 [[고종(대한제국)|고종]]이 [[흥선대원군]] 모르게 궁궐의 내밀한 북쪽에 국고가 아닌 사비로 지은 '궁 안의 궁'이다. 실제로 1873년부터 고종이 친정을 시작했기 때문에, 건청궁 건설은 아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해석이 있다. 장안당은 고종이 머물던 처소로 민가의 사랑채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이후 버려졌다가 [[1909년]](융희 3년) 철거되었고, [[2007년]] 복원되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news.chosun.com/2007101800908_0.jpg|width=100%]]}}} ||'''[[경복궁 건청궁#s-3.2|곤녕합(坤寧閤)]]'''[br][[명성황후 민씨]]가 머물던 처소로 민가의 안채 역할을 하던 장소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인에게 명성 황후 민씨가 시해된 장소이며, 시신은 곤녕합 옥호루(玉壺樓)에 잠시 안치했다가 곧 건청궁 뒷쪽 녹산(鹿山)에서 불태워졌다. 이곳 역시 [[아관파천]] 이후 버려졌다가 [[1909년]](융희 3년) 철거되었고, [[2007년]] 복원되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경복궁_집옥재.jpg|width=100%]]}}} ||'''[[경복궁 집옥재|집옥재(集玉齋)]]'''[br]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동쪽에 있는 전각으로 왼쪽은 팔우정(八隅亭), 오른쪽은 협길당(協吉堂)과 연결되어 있다. 원래는 [[창덕궁]]에 있었으나 1888년(고종 25년)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이어하면서 건물을 이건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국풍 벽돌 건물로 지어졌다. 고종은 이곳을 서재, 어진 봉안처, 외국 사절 접견소 등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수도방위사령부|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이 주둔하는 바람에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6년에 수도 경비 사령부 30경비단이 부대 이전을 함으로써 이후 복원 작업을 실시하여 2006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향원정.png|width=100%]]}}} ||'''[[경복궁 향원정|향원정(香遠亭)]]'''[br]건청궁 남쪽 연못의 섬에 있는 2층의 누각. 건청궁의 후원 역할을 하는 장소였기에 건너가기 편하도록 건청궁에서 향원정을 향해 다리가 놓여 있다. 이 다리는 6.25 전쟁 때 불탄 후 1953년에 재건할 때 자리가 바뀌어 향원지 남쪽에서 향원정으로 향하게 놓여져 있었으나 2020년 복원 공사를 통해 다시 원래 자리를 찾았다. 현재는 [[창덕궁 부용정]]과 함께 국전[* 대한민국 미술 대전. 문화 예술 진흥원이 주관하는 종합 미술 전시-관람 행사로 1982년 이전에는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로 불리기도 했다.] 출품작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였다. 2017년 5월부터 전면 해체 보수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2년간 진행될 예정이며 헐거워진 목재 접합부, 토사가 쓸려내려가 약해진 지반 지지력를 강화하고 다리를 원래 자리인 북쪽으로 옮긴다고 한다. 1887년 3월 6일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경복궁에 설치되었을때 발전기 냉각수를 확보하기 위해 향원정 남쪽에 발전기가 설치되었던 역사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