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복궁/건축물 (문단 편집) === 연침 권역 === || {{{#gold ''' 사진 '''}}} || {{{#gold ''' 설명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경복궁 자경전.png|width=100%]]}}} ||'''[[경복궁 자경전|자경전(慈慶殿)]]'''[br]원래 이 자리 근처에는 자미당(紫薇堂)이 있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이후 자미당은 경복궁 중건때 [[창경궁 자경전]]을 옮겨서 [[경복궁 자경전]] 서쪽에다가 지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1867년(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헌종(조선)|헌종]]의 어머니이자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양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대왕대비 조씨]]를 위해 지었지만 1873년(고종 10년) 화재로 소실되어 1888년(고종 25년) 중건했다. 동쪽 정면은 정면 10칸, 측면 4칸의 자경전이고, 여기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청연루(淸燕樓)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협경당(協慶堂)이 맞닿아 있으며, 서쪽 뒤쪽으로 정면 2칸, 측면 6칸의 복안당(福安堂)이 연결되어 있다. 경복궁에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시대부터 남아있는 연침 건물이며,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09호로 지정되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경복궁_자경전.jpg|width=100%]]}}} ||'''[[경복궁 자경전#s-5.1|자경전 꽃담]]'''[br]자경전 서쪽에 있는 담장으로 황토색 전돌과 흰 삼화토를 사용해 만든 벽면에 각종 길상문자와 길상도안, 기하학적 문양을 장식했다. [[서울특별시]]가 '서울 10대 대표색'을 선정하면서 이 꽃담의 색깔을 '꽃담황토색'으로 명명해 포함시켰다. 서울 시내의 택시 중 꽃담황토색으로 도색된 차량이 종종 보이는데, 도입 초기에는 [[똥|X]]색 같다며 거부감이 많았지만 지금은 친근해진 모양이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2281446481001|#]] 다만 일제강점기에 찍힌 유리건판과 비교했을 때, 현재의 꽃담의 일부가 미복원되어 벽돌로 막아놓은 흔적이 있으며, 벽돌로 만든 한자와 그림의 순서가 제대로 복원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지적에 문화재청은 유리건판대로 복원하려면, 꽃담을 전면해체하여 복원해야하는 데,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글자와 그림의 훼손이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자경전_십장생굴뚝(2011촬영,_문화재청).jpg|width=100%]]}}} ||'''[[경복궁 자경전#s-5.2|자경전 십장생 굴뚝]]'''[br]자경전 내부의 온돌방과 연결된 여러 개의 굴뚝을 하나로 모아 만든 굴뚝이다. 전돌을 쌓아 만든 담장 벽면의 중앙에는 장수를 의미하는 소나무·거북·사슴·불로초 등의 [[십장생]]과 그 밖의 각종 길상을 상징하는 동물들을 배치해 자경전의 주인인 대왕대비 조씨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0호로 지정되었다. 자경전과 합쳐서 지정된 게 아니라 '''굴뚝만''' 독립적으로 지정된 것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경복궁 제수합.jpg|width=100%]]}}} ||'''[[경복궁 제수합| 제수합(齊壽閤)]]'''[br]경복궁의 건물이다. 자경전의 동북쪽에 있다. 경복궁의 전각이지만, 현재는 국립민속박물관 경내에 있으며 용도는 확실하게 모른다. 용도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자세하게 알 수 없다.자경전이나 만경전의 별당이라는 의견과, 내전에서 일하는 나인들의 거처라는 의견이 있다. 또한 왕실의 친인척들이 궁에 올 때 대기소로 썼던 곳이라는 견해도 있다.1395년(태조 4년)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는 없었고, 1865년(고종 2년)에 창건되었다. 고종 때 제수합은 지금처럼 건물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주변에 행각과 문이 있어 하나의 독립된 영역을 형성한 전각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행각과 문이 헐려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제수합 본채는 살아남았다.2004년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이 때 땅에 묻혀있던 기단을 발굴하여 복구하였다.경복궁 1차 복원 공사 5단계(2001 ~ 2009)에 제수합의 행각이 복원될 예정이였지만 자료 부족으로 인해 무산되었고 2차 복원 공사 4단계(2031~2042)로 밀려났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