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성군 (문단 편집) == 역사 == 여진족은 이곳을 우롱이(于籠耳), 목랑고(木郞古)라 했다. 목랑고는 [[여진어]]로 [[거울]]이란 뜻으로 이 명칭을 이어 鏡城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1398년, 조선 건국 이후에야 경성(鏡城)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변방의 성으로 남을 뻔한 이 성은, [[세종(조선)|세종]] 시기에 [[두만강]] 변에 [[육진]]을 개척하고 경성도호부(1432년)로 승격되면서 함경도의 주요 지역이 되었다. 특히, 1467년 [[이시애의 난]]으로 그간 함경도 북부의 거점도시였던 [[길주군|길주]]가 길주목에서 길성현(1467년)으로 강등되자, 이를 대신해 경성이 함경도 북부의 거점도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함경도에서 '경'이란 이름이 경성에서 따오게 된 것은 덤.[* 정확히는 세조 대는 [[영흥군]], [[안변군]]의 이름을 따서 영안도였고, [[중종(조선)|중종]] 때에야 함경도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다.] [Include(틀:조선의 행정구역)] [[23부제]]를 시행했을 때 조선 최북단에 경성부가 설치되었다. 영역은 이후의 [[함경북도]]와 거의 비슷했다. 1896년 [[함경도]]가 남북으로 분리될 당시, [[함경북도]]청 소재지였다. 1920년대에 [[일본 제국|일제]]가 경성읍내에서 나남읍으로 도청을 이전했다가, 1940년 나남읍이 [[청진시|청진]]에 편입되면서 졸지에 도청소재지 타이틀을 청진에게 빼았겼다. 원래 면적은 '''3,060㎢'''로, 광복 당시에는 [[함경북도]]에서 면적 2위의 큰 군이었다(1위는 [[무산군]]). 1952년 군면리 대폐합을 거치면서 크기로는 군 중에서만도 4위로 밀려났다. (1위 [[어랑군]], 2위 [[무산군]], 3위 [[연사군]]) 재미있는 점은 '''어랑군 전체가 원래 경성군 관할'''이었다. [[청진시]]로도 일부 땅이 넘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