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성부 (문단 편집) === 도로 === [[일제강점기]] 초반만 하더라도 화물의 운송을 대부분 철도로 했고, 자동차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도로교통은 미비하기 그지없었다. [[한강철교]]가 [[1900년]]에 개통된 데에 반해 [[한강인도교]]는 그보다 17년이나 늦은 [[1917년]]에나 개통되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고종 대에 대한제국은 한성에 서구 열강처럼 대각선 도로망을 갖출 예정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 자동차가 늘어나게 되면서 경성부의 도로도 개수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1930년대에 이르면 대대적으로 토목사업을 벌이며 도로를 닦았다. [[삼일대로]]나 [[한남대로]], [[이태원로]] 등이 다 이때 생긴 도로였다. 1940년대에도 도로 건설은 부지런히 이루어지다가, 이 또한 물자공출로 인해 공사가 무기한 중단되었고, [[6.25 전쟁]] 직후에나 겨우 완성을 본 경우가 많다. 철도와 마찬가지로 전국에서 경성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개·보수할 필요성도 높아지면서 1930년대를 전후하여 현재의 [[경인로]]가 되는 경인산업도로가 개수되고, 경수가도, 경춘가도 등이 개수되거나 신설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