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성제국대학 (문단 편집) === 이공학부 === ||[[파일:keijoimperialuniversityfacultyofscienceandengineering.png|width=100%]]|| || [[서울과학기술대학교/캠퍼스#s-4.1|이공학부 본관]] || 제5대 하야시 총장이 강력하게 주장해온 이공학부의 개설은 [[중일전쟁]] 개전으로 이공학부 증설 주장을 더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조선총독부]]에 의해 1937년 실현 단계에 접어들어, 경기도 양주군 [[노원구|노해면]] [[공릉동|공덕리]][* 1963년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孔德里)'를 서울특별시로 편입하려고 계획했지만, 마포구에 한자까지 똑같은 공덕동(孔德里)이 또 있기 때문에 인근에 위치한 조선 11대 왕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의 무덤태릉(泰陵)에서 따와 태릉동(泰陵洞)으로 변경하면서 편입되었다. 하지만 기존 공덕리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고, 지역 주민들 간 협의가 이루어져 1970년 '공덕'과 '태릉'에서 한 글자씩 따서 '공릉동'이라고 바꾸면서 공릉동이 되었고, 이것이 역명의 유래가 되었다. 또한 경춘선이 이설되기 전 성북역(현 광운대역)에서 분기되던 시절에는 이 곳에 경춘선 신공덕역이 있었는데, 역 이름이 상술한 연유에 의거하였다.]의 16만 평이 넘는 부지에 이공학부 캠퍼스 공사가 시작되었다. 광대한 교지가 필요한 이공학부의 특성상[* 舊 경성제대 이공학부 교지의 넓이는 現[[서울과기대]] 캠퍼스를 포함하여 주변의 경기기계공고, 원자력병원, 한국전력연수원(舊 원자력연구원), 초등학교, 특수학교 등을 모두 포함한 엄청난 규모였다.]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있는 [[대학로(서울)|대학 본부]] 근처에 캠퍼스를 마련하지 못했고, 타 학부 캠퍼스와 다소 떨어진 양주군 노해면 [[공릉동|공덕리]]에 건설하게 되면서, [[조선총독부|총독부]]에서는 이공학부 통학을 위해 [[경춘선]]을 이곳 바로 앞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하여[* [[경춘선]] 개통 당시 노선을 경성제대 이공학부 앞을 지나가도록 하기 위해 역U자 모양으로 휘어가게 노선을 잡았다. 구 [[경춘선]] 노선이 [[광운대역|성북역]]에서 바로 화랑대 방면으로 가지 않고 [[신공덕역]]으로 우회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1939년 여름에 개통된 경춘선과 함께 통학에는 [[경원선/역 목록#s-2|경원선]] [[광운대역|연촌역]](硯村驛)이 함께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38년 4월 15일 '''[[https://law.go.kr/LSW/lsInfoP.do?lsiSeq=70115|경성제국대학 학부에 관한 건]]'''(1941년 1월 1일부 시행)이 개정되어 경성제국대학의 학부로 기존의 법문학부, 의학부에 이공학부가 추가되었다.[* 대만의 [[다이호쿠제국대학]] 공학부는 대전 말기인 1943년에 가서야 설치되었다.] 1938년 경성제대 예과 입시에서 이공학부 진학생(이과甲類)[* 의학부 진학생반이 기존 이과반에서 이과乙類가 되었다.]들을 선발하기 시작하여 이들이 [[구제고등학교|예과]] 3년 과정을 수료한 1941년 3월에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규정'[* 조선총독부령 제29호]이 제정됨에 따라 물리학과·화학과·토목공학과·기계공학과·전기공학과·응용화학과·광산야금학과 등 7개 학과로 구성된 이공학부(본과)가 정립되었다. 그런데 1937년부터 시작된 이공학부 교사 신축공사가 동년 개전한 [[중일전쟁]]의 여파로 원자재 배급 및 예산 배정에서 후순위로 밀리면서 완공이 지연되었고, 특히 철근 등 철제 보급이 안 되어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공학부 제1회(예과 제15회) 37명은 1941년 4월부터 1942년 4월까지 1학년을 [[대학로(서울)]]의 법문학부와 의학부 교실을 빌려 수업을 받으면서, 법문학부 북쪽 교실과 학생집회소의 서쪽에 가교실과 가제도실을 신축하고 법문학부의 남쪽에도 온실과 가창고 등을 지어 당시 이공학부의 부족한 시설로 사용했다. 1941년 9월 22일 이공학부 4호관 상량식을 치르고 1942년 4월 경성제대 이공학부 신축교사가 일부 준공되면서 이공학부 캠퍼스에 입주하게 되었고, 1943년에 이공학부 2호관도 완성되어 캠퍼스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43년 경성광산전문학교(이후 해방 후 국립서울대학교 공과대학 5호관) 역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의 경성제대 이공학부 캠퍼스 바로 옆으로 이전되면서 공덕리(현 노원구 공릉동) 캠퍼스에는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와 경성광산전문학교의 교사가 같이 위치하게 되었다.] 이공학부 제1회 학생들은 1941년 3월 예과를 제15회로 수료하고 동년 4월 이공학부에 진학했으므로, 원래대로라면 3학년을 마치고 1944년 3월 졸업하였어야 하나, [[태평양전쟁]] 개전으로 각급학교의 수학연한이 단계적으로 단축(3개월→6개월→1년)됨에 따라 1943년 9월 졸업하게 되었고, 그렇게 이공학부는 1944년 9월 제2회, 1945년 9월 제3회 등 1945년까지 3회 졸업생 총 110명을 배출했다. 제1회 졸업생(예과 15회) 42명 중 조선인은 12명이고 2회 9명, 3회 11명 등 조선인 32명(일본인 포함시 총 110명)이 경성제대 이공학부를 졸업하고 이학사/공학사를 받았는데 이 중에는 수학자 [[이임학]], 기계공학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1197|김희철]], 조선공학자 [[https://www.koreascientists.kr/scientists/merit/merit-list/?boardId=bbs_0000000000000028&mode=view&cntId=5&category=2017&pageIdx=|김재근]], 전기공학자 [[https://www.koreascientists.kr/scientists/merit/merit-list/?boardId=bbs_0000000000000118&mode=view&cntId=34&category=2017&pageIdx=|한만춘]] 등이 있었다. 또 해방 당시 경성제대 이공학부에 재학 중이던 조선인 학생은 3학년 25명, 2학년 19명, 1학년 17명 등 총 61명으로 경성제대 이공학부의 조선인 학생은 졸업생과 재학생을 합쳐 총 93명이었다고 한다. [[포항공대]] [[http://magazine.kcue.or.kr/last/popup.html?vol=143&no=3465|장수영 교수]] 글을 참조.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과학사 연구의 원로인 서울대 동양사학과 이성규 교수의 논문 [[https://www.google.co.kr/url?sa=t&source=web&rct=j&url=http://db.history.go.kr/item/pdfViewer.do%3FlevelId%3Dhn_042_0030&ved=2ahUKEwj_hcTExObtAhWX7GEKHYCLCjcQFjABegQIARAB&usg=AOvVaw3qpnTeHFz2GCVcM-fJ4_An|이공학부를 중심으로 본 경성제국대학의 식민사적 의미]]를 참조.[* 서울대 역사연구소장 이성규 교수(동양사학과)는 [[https://www.sciencetimes.co.kr/news/과학으로-다시-짚어보는-근현대사/|「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의 식민사적 의의」]]에서 "경성제국대학의 이공학부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며 “경성제국대학이 3회에 걸쳐 배출한 졸업생 중 조선인 이공학부 졸업생은 37명으로 이들은 해방 후 신생 독립국의 엘리트로서 대학교육건설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였다. 또 조선반도의 유일한 대학으로 군림한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에 관한 국내 사학계의 서술의 비중과 평가에 의도적인 왜곡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그는 경성제대 이공학부의 조선인 졸업자 수가 ‘37명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비판하며 ‘37명이나 된다’고 평가하며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식민지 과학기술의 전당이자, 해방 후에 신생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에 경성제대 졸업생들이 지대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며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를 "[[일본제국|제국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이루어놓은 성과 중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규정한다. 교수신문 2005년 5월 7일자 참조. ] 1945년 9월 공릉동 이공학부 건물은 미군병원으로 징발되면서 실험시설을 철거당하고 10월 경성대학으로 개칭되어 1946년 졸업생을 낸 후, [[국대안]] 시행에 따라 이공학부중 이학계열은 법문학부와 합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제1류 인문학(어문/역사/철학)계열, 제2류 사회과학계열, 제3류 자연과학계열]이 되었는데 청량리의 옛 예과건물을 임시로 사용하였다가 6.25때 전소되었다고한다[[http://www.khss.or.kr/?mid=kjhs&category=143&listStyle=viewer&document_srl=1534|경성제대 물리학과의 변천사]]. 전쟁후 동숭동의 구 중앙공업시험소 시설을 사용하다가 1967년 인근에 과학관을 신축하였으나 곧이어 1975년에 관악캠퍼스로 종합화되면서 인문대, 사회대와 분리되어 오늘날의 자연과학대학이 되었다. 이공학부 공학계열은 [[조선총독부]] 소관 관립 [[구제전문학교]]였던 [[http://ko.wikipedia.org/wiki/%EA%B2%BD%EC%84%B1%EA%B3%A0%EB%93%B1%EA%B3%B5%EC%97%85%ED%95%99%EA%B5%90|경성고등공업학교]][* 경성고공 졸업생들이 단순 기술자인지 아니면 전문적인 수준에 이르렀는지는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전문적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는 논자들은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생들은 일본계 공장에 관리자로 취업하고 조선총독부 기수(技手, 정식명칭은 판임관(判任官)이라 하며 관료 중 말단을 형성했다. 요즘으로 치면 [[기술고시]] 합격하여 부임한 5급 공무원 수준) 등으로 진출한 것으로 봤을때 무조건 단순 기술자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단순 기술자로 보는 논자들은, 당시 일본이 실업적 공'''업''' 교육과 학문적 공'''학''' 교육을 아주 엄밀히 구분하고 있어 공업전문학교에서는 실업 교육을 바탕으로 하고, 대학에서는 학문적인 공학 교육을 행했으므로 [[구제전문학교]] 졸업자들이 실무적 측면에는 어느 정도 밝을지 몰라도 기술적 통찰력은 크게 부족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바로 창업을 하거나 건축 사무실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공장과 같은 산업체나 기수와 같은 기술관으로 나가서 별도의 기술 수련을 받는 식이었다. 실제로 경성고공 출신의 근대 건축가들 모두가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건축일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토목회사나 조선총독부의 영선과 말단에서 구르면서 경력을 상당 부분 쌓은 다음에 자신의 사무실을 내었다. 이 논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인적자본 축적과 관련해 꽤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제이다.]와 통합되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재탄생하였는데 공릉동 부지를 계속사용하다가 1980년에 관악산으로 이전하였다. * 공통 개설과목 * 수학1~2/ 수학특강/ 수학연습1~2/ 수학특강연습/ * 응용역학/ 응용역학개론/ 응용역학연습/ 응용역학개론연습 * 응용물리/ 응용물리학연습1~2/ 응용열역학1~2/ * [[광물학]]/ [[지질학]]/ 광물학실험/ [[지질학]]실험/ 지질실습/ * [[분석화학]]1~4/ 분석화학실험1~2/ * 기술학1~2/ 화약학 및 실험/ 화학병기학/ [[건축학개론]]/ 조병학개론/ 공업경제/ 철학개론 * [[물리학과]] 개설과목 * 물리실험학1~2/ [[역학]]1~2/ 물성론 및 열학/ [[전자기학]]/ [[광학]]1~2/ 상대론물질구조학1~2/ [[통계역학]]/ 양자론/ 고체론 및 액체론/ [[핵물리학]]/ 항공역학/ 지질학/ [[대기과학|기상학]]/ [[천문학]]/ 지구물리학/ [[천체물리학]]/ 역학연습1/ 물리학연습1~2/ 이론물리학연습/ 물리학실험1~2/ 물리학논강/ 물리학연구/ 물리학연습 * [[화학과]] 개설과목 * [[무기화학]]1~2/ 무기화학실험/ 무기화학특강 * [[물리화학]]개론/ 물리화학개론실험/ 물리화학 1~2/ 물리 화학 실험/ 물리화학 특강 * [[유기화학]]1~2/ 유기화학실험 * 콜로이드화학/ [[생화학|생물화학]]/ 콜로이드화학실험/ 화학특별문제연구 및 논강/ 화학외국어 연습 * [[토목공학과]] 개설과목 * 석공학/ 철근콘크리트/ 철도공학1~2/ 도시철도/ 교량공학1~2/ 하해공학1~2/ 상수도공학/ 하수도공학/ 수리학/ 토목재료/ 측량학1~2/ 시공법/ [[도시계획]]/ 교량미학/ 관개배수/ 도로가로/ 토목행정법/ 토목공학개론/ 토목기계/ 발전수력/ 세균학 및 수질시험법/ 방재공학/ 토목공학제도/ 석공학제도/ 철근콘크리트제도/ 철도 계획/ 교량계획1~2/ 하해공학 계획1~2/ 상수도 계획/ 하수도 계획/ 토목재료시험1~3/ 측량학실습1~2/ 하해공학실습 * [[기계공학과]] 개설과목 * 기계역학/ 기계공작법/ 공작기계/ 실험기계공학/ 수력학 및 수력기계/ 수차/ 펌프/ 열기관 일반/ 증기터빈/ 내연기관/ 기계설계개요/ 기계설계1~2/ [[유체역학]]/ 내연기관특강/ 자동차공학/ 항공기 일반/ 선박용 기관/ 철도차량/ 조중기/ 소웅기 및 압축기/ 냉동기 및 냉동법/ 방적기계/ 난방 및 환기/ 원동소설계/ 기계제도개요/ 기계제도1~2/ 기계공작법실습/ 재료강약실험/ 기계공학실험1~2/ 기계공학실습/ 기계공학논문논강 * [[전기공학과]] 개설과목 * 전기자기학/ 교류이론/ 전기회로이론/ 전기계기 및 측정법/ 방전현상/ 고전압공학/ 일반전기공학/ 전기기계기구1~2/ 전기기계설계법/ 전기공학시험법/ 발전공학/ 전력전송/ 전력분배/ 전등조명 및 전열/ 전기철도/ 유선통신/ 방송통신/ 전자공학/ 무선통신1~2/ 전기재료/ 음성공학/ 전기응용공학 및 논강/ 전기법규/ 전기공학실험1~3/ 전기공학연습1~2/ 전기기계제도/ 일반전기공학실험 * 응용화학과 개설과목 * 응용화학1~5A/ 응용화학1~5B/ 화학공업1~2/ 응용화학실험1~5/ 응용화학계획제도/ 응용화학논강 * 광산야금학과 개설과목 * 채광학1~2/ 광산기계학/ 선광학/ 전광학/ 광상학/ 광산측량학/ 광산위생학/ 광산법규/ 재료운반/ 야금학개론/ 야금학/ 철야금학1~2/ 야금기계학/ 합금학/ 제조야금학1~2/ 금속조직학/ 금속재료/ 채광학실험/ 선광학실험/ 광상학실험/ 광산측량실험/ 광산실습1~2/ 야금학실지연습1~2/ 금속조직학실험/ 시금학실험1~2/ 야금학실험1~4/ 야금학계획 및 제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