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애왕 (문단 편집) == 개요 == [[신라]]의 제55대 [[국왕]]. [[시호]]는 경애왕(景哀王), 휘는 위응(魏膺), 관등은 [[이찬]], 직위는 [[상대등]]이었다. 제53대 [[신덕왕]]의 [[차남]]이자 제54대 [[경명왕]]의 동복동생으로, 신라 후기 박씨 [[왕조]]의 마지막 군주다. 후임 [[경순왕]] 김부 시대에는 신라의 통치력이 [[경주시]] 바깥 어느 곳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시국가]] 정도까지 떨어져버렸으므로[* 이처럼 수도와 그 변두리에만 간신히 행정권을 행사한 나라는 [[주나라]], [[동로마 제국]], [[무굴 제국]] 등이 있다.] 당당한 영토국가 신라로서는 이 임금이 마지막이다.[* 단, 경순왕 또한 실권과 영향력은 신라가 멸망하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았기에 후대 [[고려]]의 [[우왕]]과 [[창왕]] 및 [[공양왕]], [[조선]]의 [[고종(대한제국)|고종]]과 [[순종(대한제국)|순종]]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경순왕 시대 신라는 영역이 그야말로 시조 박혁거세 시절 [[사로국]]으로 축소되어 있었으나, 경순왕은 적어도 국내에서의 실권만큼은 어느 시대 신라 국왕에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공고히 장악하고 있었다. [[화백회의]]에서 '''[[마의태자]]까지 반대에 가세해 엄연히 부결로 뜬 고려 귀부 건을 혼자서 뒤집어버렸을 정도였다'''. 신라 국왕들이 대체로 왕권이 강한 편이었으나 진골들의 힘이 워낙 강해 몇 가지 예외 외엔 화백회의에서 내려진 결론을 왕이라고 자기 맘대로 밀어붙이기란 정말 어려웠다. 이런 점에선 아예 실권마저 대부분 박탈당한 상태였던 [[고려]]나 [[조선]]의 사례와 대단히 다름이 또 확인된다.][* 당장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 역시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영류왕]]을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올린 사람이라 [[바지사장|치세 내내 실권이 없었다]]. 연개소문의 사후(死後)에도 [[연남생]] - [[연남건]] - [[연남산]] 등 연씨 일가가 여전히 실권을 독점 중이었고, 결국 고구려가 [[668년]] 멸망할 때까지 보장왕은 연씨 일가의 [[꼭두각시]] 신세였다.] [[포석정]]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왕이기도 하며, 시호에 슬플 '[[애(시호)|애]]'(哀)가 들어가는 것도 이것이 이유다. 즉위 전에는 형 [[경명왕]] 때 [[상대등]]을 지냈다. 신라는 [[사위]]가 [[왕위]]를 물려받는 일이 많았는데, 대개 [[근친혼]]이 많아서 넓은 의미로 [[혁거세 거서간|박혁거세]] 시조를 중심으로 성씨와 관계없이 따지고 보면 모두 같은 혈족이었다. 따라서 혈족의 의미가 오늘날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성씨가 다른 왕이 나와도 동요가 생각보다 적었다. 사실 사망한 왕을 기준으로 출생 순서에 따라 자녀의 왕위 계승 순위가 정해지는 것이어서, 이전 왕의 성씨가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물 마립간]] 이후 수백년간 경주 김씨가 신라 왕위를 차지했던 만큼, 이론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라도 [[박(성씨)|박씨]] 왕실에 대한 [[경주 김씨]]와 기성 세력의 반발 및 알력 정도는 존재했다고 보는 경우가 학계에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