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인왜란 (문단 편집) == 전라도 루트에 대한 개연성 논쟁 == * 댓글이나 작가가 갤주인 디씨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왜군의 기습공격 대목이 가장 개연성 없다고 비난받고 있다. 이러한 비난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단 이미 대마도를 조기경보 기지화하기까지 했는데 소수의 왜구도 아니고 대병력이 해상 이동하는 것을 이순신이 놓쳤을 리가 없다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육군 예비역 중심인 한국 남성 독자들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작중 시점은 1590년, 16세기다. 이 당시 해상초계는 완전히 육안에만 의지해야 했고, 상희가 렌즈 기술과 천리경을 개발하긴 했지만 아직 초기단계다. 인류역사상 인력 견시의 수준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2차 대전 일본 해군도 야간에 식별은 8km 정도가 한계였고, 현재 해군의 참수리 견시가 함교 쌍안경으로 식별 가능한 거리를 대강 5천 야드(약 4,500m)정도로 잡는 것을 생각하면 판옥선 맨눈 탐망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도 남을 것이다. 대마도를 조기경보 기지로 만들었다 쳐도 그건 어디까지나 동래 방면 침공에나 유용하지, 고토를 거쳐 전라도 방면으로 돌아들어가는데 대마도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결국 전라좌수군이 현지 초계로 침공군을 잡아내는 수밖에 없는데, [[레이더]]나 근대식 통신시설이 있는 2차 대전 당시에도 해무나 야음을 틈타 지근거리의 적을 지나치거나 역으로 미리 피하지 못하고 맞닥뜨리는 해프닝이 한두 건이 아니다. 아무리 이순신이 통제사래도 경상우수사를 겸직하기 때문에 거제에 있고, 미래지식을 가진 주인공조차 경상도 쪽만 눈이 벌개져라 주시하는 상황에서, 타 장수들이 이순신급이라고 쳐도 '''[[해무]] 짙게 깔리는 [[새벽]]'''때의 전라좌도 해안으로 선공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천안함 피격사건]]과 관련하여 '''한미연합해군이 태안반도에서 훈련 중 이었다는데 어떻게 북한군을 발견 못할 수가 있죠?'''라는 음모론과 비슷한 수준의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애초에 탐지가 불가능한 것을 왜 탐지 못하냐고 악을 쓰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또한 고토 열도 해적들 주요 침략루트가 전라좌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발포가 쉬이 함락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애초에 [[을묘왜변]]의 주전장도,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의 주 무대도 전라도 지역이었다. * 그리고 길안내를 맡은 고토 해적들은 과거 무종, 명종이 파병한 여진족의 규슈 약탈 당시 고토 열도로 피난한 일본인의 후손들이었다. 과거의 약탈이 나비효과로 돌아온 셈. * 애당초 주인공과 비변사 신료들이 '왜군의 목적은 단순히 조선을 약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예 정복을 위해 공격해 오는 것이다' 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상도로 주공이 올 것임을 확신한 것이다. 정복을 위한 대규모의 병력을 상륙시켜서 병참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곳은 경상도 뿐이기 때문. 전라도에 일본군이 상륙하자 주인공은 자기가 예측을 잘못한건가 하고 심하게 멘붕하지만, 정작 이항복과 이순신은 전라도에 상륙한 군은 페이크라는 확신을 계속 지켰다. 이항복은 멘붕한 주인공에게 주공이 경상도로 올테니 자책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이순신은 경상도로 주공이 다시 올 것이니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경상수영의 전선들을 전라도 지원으로 보내지 않고 유지했다. 실제로 이 공격루트는 그냥 눈을 돌리기 위한 오다의 하나의 페이크 공격이었고, 조선에서는 제대로 대비를 못했음에도 손쉽게 병참을 끊어서 이 진공로에 들어온 히데요시군은 부족한 병참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루었다. * "작 중의 조선인들은 왜 아무도 그걸 예측하지 못했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전에 유성룡이 비변사에서 '황해 해안선을 따라 적이 북진하고 조운로를 봉쇄할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히데요시 군의 주목적은 조창을 털어 조세가 한양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는 것이었으며, 전주성을 개축한 것도 유성룡이 제시한 가능성을 고려해서 기본적인 조치는 해두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때 주인공은 '듣고보니 그럴 수도 있긴한데 일본이 그런 작전을 짜도 이순신이 해로를 차단하면 금방 끝날 것'이라고 판단하며 경상도에 그냥 몰빵하는 능지떡락을 보여주는데, 정작 유성룡은 멀쩡했던걸 보면 유성룡을 띄워주기 위한 장면이라고 보는게 맞는듯. 다행히도(?) 이순신이 없는 전라수영의 전력만으로도 전라도 측 일본군의 보급을 끊는데 성공했다. 전라도 측 수영과 병영에는 '차후에 경상도로 왜군이 쳐 들어올 것이니 경상도 도와줄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식으로 귀뜸이 내려가 있었다. 팬덤에서는 이 부분이 좀 많이 과장되어서 '원래 하던 방비도 풀고 있어도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오해가 좀 커져있는 부분. * 게다가 자세히 보면 일본군 함대가 규슈 서부 혹은 남부에 집결 중이었다는 암시도 여럿 있다. 일기도와 대마도 및 일본으로 간 조선 상인들은 규슈 북부에서는 일본군의 특이 동향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하며, 오다는 '자신은 류큐를 거쳐 강남에 상륙하고 조선왕은 한편으로 끌어들여 요동을 치게 하는' 작전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조선이 대놓고 거부하자 그제야 조선을 정벌하는 것으로 계획을 선회하며, 오다가 조선 침공을 시작하는 와중에도 조선측은 규슈 북부에서 특이 동향을 발견하지 못한다. 류큐를 통해 강남으로 진군하는 것이 본 목적이었던지라 규슈 서부에 일본군이 집결해있었던 것이며, 그대로 규슈 서부에서 출항하고 크게 우회해서 전라도로 상륙했기 때문에 조선군이 발견하지 못한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