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제계획/대한민국 (문단 편집) === 종합부흥물동계획 재원 조달 === 대통령 [[이승만]]은, 미 의회가 2억 달러를 허가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1953년 7월 31일 13개 부처에게 각각의 사용계획서 작성을 지시한다. 그리하여 8월 16일 국무회의는 이것과 한국민간구호처(CRIK[* Civil Relief in Korea]) 5800만 달러에 대한 사용계획서를 종합하여 6.25억 달러의 요청을 선별했는데, 철도·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8200만 달러(32%), 원면, 생고무, 비료, 건축 재료 등 시설 복구 및 산업 육성에 필요한 원재료 조달에 7900만 달러(31%), 10만톤 규모의 질산암모늄(초안)비료 공장[* 이후의 충주비료공장], 20만톤 규모의 시멘트 공장[* 이후의 문경시멘트공장], 12만C/S 규모의 판유리공장[* 이후의 인천판유리공장] 등 제조업 공장 건설에 2800만 달러(11%), 전력 확충에 2400만 달러(9%), 문화·교육에 1900만 달러(7%), 농림수산업에 1300만 달러(5%), 석탄 및 광업에 860만 달러(3%)를 책정하였다. 이러한 원조자금에 의한 경제재건계획의 기본 방침은 1953년 10월 종합부흥계획으로 이어지게 되며 개략적인 내역은 다음과 같다. ||<-2> 총 2억 5800만 달러 || ||<|5> 사회간접자본[br](32%, 8200만 달러) || || 철도(49%) || || 항만·도로(43%) || || 통신(6%) || || 창고(2%) || ||<-2> 원재료[br](31%, 7900만 달러) || ||<|3> 기간산업[br](28%, 7350만 달러) || 제조업(38%) || || 전력(33%) || || 1차산업(29%) || ||<|3> 문화시설[br](9%, 2300만 달러) || 문교(83%) || || 방송(8.5%) || || 기타(8.5%) || ||<-4> 기간산업[br](7350만달러) || || 전력(33%) || 화학비료공장(16%) || 광업(12%) || 농림업(11%) || || 수산업(7%) || 시멘트공장(6%) || 연초공장(5%) || 섬유공장(4%) || || 철강공장(3%) || 판초자공장(1%) || 자동차수리공장(1%) || || 이에 미국은 1953년 8월19일 원조금액을 6억 2,800만으로 증액하였고, 1953년 9월 8일 부흥계획합동경제위원회에서 심의 등을 통해, 이를 기준으로 한 24쪽의 한국경제 부흥계획서가 마련되었다. 또 1953년 9월1일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은 40여개국의 갹출을 통해 7000만 달러를 확보, 한국민간구호처(CRICK) 자금을 포함 1억 3000만 달러 상당의 [[UN]]원조를 확정하여 1954년 4월 12일 부흥계획에 계상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