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시/역사 (문단 편집) === [[선사 시대]] === 경주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를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주변지역의 정황상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의 경주시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신석기 시대]]의 흔적은 [[황성동(경주)|황성동]], [[내남면]]에서 약간의 토기 조각 정도만 나와서, 사람이 살긴 살았지만 그 수는 별로 많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경주분지에 사람이 많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7세기로 그 때부터 만들어진 지석묘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이들은 초기 신라([[사로국]])의 주도 세력은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다 기원전 3세기 말 ~ 2세기 초 즈음 서북한 일대의 고조선계 집단이 들어와 자리하고, 다시 기원전 2세기 말~1세기경 [[교과서]]에 나오는 [[세형 동검]]을 비롯해 [[철기 시대|초기 철기를 보유한 집단]]이 외부에서 들어온다. 아무래도 전자는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크게 패배해 요동에서 평양 일대로 중심지를 옮기게 되었을 때 발생한 피난민 집단이고, 후자는 위만의 찬탈 당시 위만에게 동의하지 않았던 한씨 조선인들 및 위만조선이 망했을 때 내려온 위만조선인들로 해석된다. 또한 2세기 초중반에는 또 다시 낙랑계 조선인들이 내려오며, 이들이 다른 조선계 집단을 아우르며 주도 집단으로 부상한다.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고조선]] 유민들이 이들일 개연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이들이 삼국사기에서 등장하는 6촌에 속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6촌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는 것이 신라 건국 신화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