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시/역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 [[1949년]] 강서면이 [[안강읍]]으로 승격되었다. * [[1955년]] 경주읍, 내동면일원 및 [[천북면(경주)|천북면]] 황성리,용강리, 내남면 사정리,탑리가 경주시로 승격되었으며, 경주군의 잔여지역을 월성군(月城郡)으로 개칭하였다.[* 신라의 도성 이름인 '[[경주 월성]]'에서 따온 것이다. 대구-달성, 수원-화성과 비슷한 케이스.] [[1973년]] 월성군 서면 일부를 [[건천읍]]으로 승격하고 월성군 내남면 율리,배리를 경주시에 편입하였다. 1975년 천북면 손곡리가 경주시에 편입되었다. 1980년 외동면을 [[외동읍]]으로 승격하였다. [[1987년]] 월성군 [[현곡면]] 금장2리가 경주시로 편입되어 [[석장동]]이 되었다. * [[1989년]]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34년만에 명칭이 환원되었다. '월성'이란 명칭은 '[[월성 원자력 발전소]]' 등의 이름으로, 아직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1995년]] 경주시와 [[경주군]]이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 [[2021년]] 양북면이 [[문무대왕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50년]] [[6.25 전쟁]] 초기부터 끝까지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 방어선이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사수된 덕분이다. 낙동강 전선이 최대로 밀렸을 때, 경주 북쪽 안강까지 내려왔으나 결국 경주는 방어선 안에서 지켜졌다. 그래서 경주에는 [[대한민국의 국보|국보]]급 문화재들이 파괴당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되면서 인근 [[포항시|포항]], [[울산광역시|울산]]보다 산업화 면에서 뒤쳐지게 되었다. [[항구도시]]인 [[포항시|포항]], [[울산광역시|울산]]보다 입지가 밀리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문화재 보호 때문에 거의 도시 전체가 개발이 제한되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 동안 [[경부고속도로]]를 제외하고는 혜택을 받지 못 했고, 관광을 제외하면 성장 동력이 없었다. [[포항시|포항]], [[울산광역시|울산]], [[부산광역시|부산]], [[대구광역시|대구]]로 인구가 많이 유출되었다. [각주] [[분류:경주시의 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