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혜공주 (문단 편집) === 한 맺힌 삶의 끝맺음 === 결국 경혜공주는 세조에게 지원받은 집과 노비를 사용하면서, 속마음이야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세조의 세상을 인정하고, 경혜공주는 아들과 함께 세조를 문안한다. 경혜공주가 35살이 되던 해, [[예종(조선)|예종]]이 갑작스럽게 죽고 예종의 조카 [[성종(조선)|자을산군]]이 왕이 되었다. 이가 성종이다. 성종 즉위 후 [[정미수]]가 열다섯이 되던 해, 돈녕부 벼슬을 하게 된다. 이때 [[정미수]]가 [[적반하장|죄인 정종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맹렬한 반대 상소가 올라오지만]], 성종은 세조의 뜻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무릅쓰고 [[정미수]]를 파직시키지 않았다. 경혜공주를 동정하고 세조의 피맺힌 업보를 씻고 싶어하던 [[정희왕후]] 역시 [[정미수]]를 지원했다. 어린 아들이 조정에서 벼슬을 하며 생활이 궤도에 오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던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정미수가 돈녕부 벼슬을 시작한 지 약 7개월쯤 후 경혜공주는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친다. 경혜공주가 죽은 다음 날 성종은 호조에 명해 이런저런 물자를 내려주라는 명을 내린다.[* 아들 정미수의 효행도 나오니 찾아보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