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혜공주 (문단 편집) === 사연 많은 혼인 === 세종 32년, 평창군주가 16세 때, 혼사가 결정되어 [[정종(부마)|정종]](鄭悰)과 혼인하였고, 이에 정종은 [[부마|임금의 사위]]에게 내리는 영양위(寧陽尉)라는 봉호를 받는다. 조선 왕녀의 혼인 적령기는 11세~13세였는데 공주가 혼인하지 않는 것에 대해 여러 추측이 존재한다. 아버지 문종과 동생을 위해서, 혹은 세종의 건강 때문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있다. 혼인 결정 후 2달도 되지 않아 할아버지 [[세종(조선)|세종]]이 승하하여 궁에서 하가하지는 않았다. 혼인할 때 그녀는 아직 [[왕녀]]가 아니라 세자의 딸로써 [[군주(동음이의어)|군주]]의 신분이었기에, [[부마]] 후보들을 궁에 모아놓고 간택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세종의 용태가 위중하였으므로 국상을 맞기 전 얼른 적당한 명문가의 아들을 골라 혼인 결정만 해놓은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