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혜공주 (문단 편집) === [[문종(조선)|아버지]]의 즉위 후 === 이후 [[문종(조선)|아버지]]가 즉위한 후 경혜공주(敬惠公主)에 봉작되었다. 그리고 궁 밖에 공주방을 마련하여 하가하였고, 이때 공주의 살림집을 마련하느라 30여 채의 민가가 헐렸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헐린 게 민가라고 해서 그저그런 초가집 30여 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때 공주의 집은 당연히 궁 근처의 부자 동네에 지어졌고, 실제로 양덕방(陽德坊)의 민가들이 철거되었다고 실록에 나온다. 당시 양덕방은 한성에서도 가장 부유한 동네였다. 양덕방은 오늘날 종로구 계동 및 가회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니… 그렇다. 바로 '''[[북촌]]'''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평창동이나 성북동의 호화 저택 수십 채가, 대통령 딸이 분가하느라 철거되었다는 의미다. 이때 문종은 "다시 조사해 보니 5채만 허물었다고 하던데? 그리고 어차피 고위 관료들이라서 다른 집에 가서 살 수가 있는데 뭔 상관이냐?"라며 반박했다. 문종이 경혜공주의 저택을 크게 지은 건 어머니 없이 혼인하는 가여운 딸을 위해서, 문종이 딸바보여서도 있겠지만 궁궐에 홀로 남겨진 단종을 위해서 서로 의지하라는 뜻도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