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계륵 (문단 편집) == 유래 == 이와 관련된 고사는 [[진수(역사가)]]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무제기(武帝紀)의 [[배송지]](裴松之) 주(注)에서 인용한 《구주춘추(九州春秋)》에서 나왔다.[* 네이버 백과에서는 《후한서》 양수전(권54 양진전에 부기)을 출전으로 삼고 있는데, 실제로 나온다. 다만 최초 출전이 아닐 뿐. 《구주춘추》는 서진 시절에 쓰였고, 같은 유송대 저작이라도 《삼국지》 배주가 《후한서》보다도 일찍 쓰였으므로 둘을 비교하면 《구주춘추》 쪽이 더 앞선다. 시대상 후한이 삼국보다 앞서기 때문에 후한서가 삼국지보다 앞선다고 착각한 것으로 추측된다.] 배송지 주석 《구주춘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때 왕이 환군하고자 하여 ‘계륵(雞肋-닭갈비)’이라는 영을 내리니 관속들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주부(主簿) 양수(楊脩)가 스스로 군장을 엄히 꾸리니 사람들이 놀라 양수에게 물었다, >“이를 어찌 알았습니까?” >양수가 말했다, >“무릇 계륵(雞肋)은 버리기에는 아깝고 먹기에는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 이를 한중(漢中)에 비유한 것이니 왕께서 환군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소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서기 219년, [[한중]]에서 조조가 [[유비]]와 [[한중 공방전|격전]]을 벌이는데 조조의 전황이 점점 불리해지자 조조군은 '군사를 물려서 한중을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날 저녁 식사는 닭고깃국이었다. 조조는 사발에 담긴 닭갈비(계륵)를 보다가 현 상황을 떠올리며 한탄했다. 한중 땅을 먹자니 [[피로스의 승리|이 전쟁으로 얻을 이익이 별로 크질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고 유비 세력에게 주자니 상대가 비웃을 것이 염려되었던 것. 이 때 [[하후돈]]이 조조에게 찾아와서 [[암구호|오늘의 암호]]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는데, 조조는 무심코 ''''계륵으로 하라."'''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조조가 닭갈비를 보고 [[진퇴양난|오도가도 못하는 자신의 상황]]이 생각나서 자문자답에 가깝게 중얼거린 것을 하후돈이 명령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즉 적절하게 의역하자면 (혼잣말로)"계륵인가..." 혹은 “계륵이다…”정도가 된다.] 하후돈은 조조가 뜻한 바가 있겠구나 싶어 더 묻지 않은 채 그대로 병사들에게 오늘의 암구호는 계륵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모사 [[양수(삼국지)|양수]]는 이를 듣자 조조가 원정을 집어치우고 돌아갈 생각임을 간파해, 자신의 군사들에게 철수할 때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짐을 싸두라 명령하라고 권했다. 문제는 하후돈이 사유를 묻자 자신의 분석을 하후돈에게 전달했는데, 하후돈은 군의 총 책임자로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이를 따라하기 시작, 이윽고 전군에 소문이 퍼져 퇴각하는 줄 알고 사기가 떨어지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당연히 조조는 평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자신의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멋대로 움직이는 양수에게 괘씸함과 분노, 그리고 속내를 들켰다는 쪽팔림을 느껴 양수를 '군의 사기를 동요시킨 죄'로 처형했으며 하후돈도 하마터면 목이 날아갈 뻔했다. 그 뒤 조조는 양수의 말을 부정하듯 억지로 전투를 이어갔으나 전투 도중 [[위연]]이 쏜 화살에 인중을 맞고 앞니가 나가는 등 죽을 위기를 겪고, 결국 한중을 공략하는 게 힘들다고 판단하고는 군사를 물렸다. 참고로 연의에서 계륵에 대한 평가는 "먹기에는 살점이 없고 버리기에는 그래도 맛이 있다(食之無肉 棄之有味)"로 위와는 약간 다르다. 드라마 [[신삼국]]에서는 하후돈의 역할을 무명의 장수가 맡았다.[* 신삼국에선 하후돈은 딱 한번 나올 정도로 그렇게 비중이 있지않기 때문이다.] 양수의 말대로 생각 없이 철군하려다가 같이 까이지만 처형은 당하지 않는다. 양수가 질질 끌려갈 때 옆에 있던 [[사마의]]가 그 장수에게 양수가 조조에게 찍힌 덕에[* 양수 하면 떠오르는 도시락 먹튀 일화도 이 드라마에 나온다. 다만 여기선 그 도시락이 [[마등]]이 선물한 거라, 조조는 혹시 독이나 들은 건 아닌가 하고 떠본 것으로 묘사된다.] 자네 목이 멀쩡했다며 장수라는 작자가 이렇게 귀가 얇아서야 쓰겠냐고 꾸짖는다. 연의에서는 양수가 '떠나기 전에 혼란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미리 수습했다.'고 대답하자 조조가 자기 속마음을 들킨 게 부끄럽고 열받아서 핑계를 대고 죽인 걸로 나오지만, 사실 연의에서도 양수의 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철수 이야기를 꺼내서 자신의 부대는 물론 지휘관격인 하후돈의 부대까지 전투 의지(사기)를 꺾어놓았고, 더 나아가 '''총대장은 주둔을 명했는데 일개 사단장이 철군을 주장해서 관철시켜서 지휘계통까지 혼란에 빠트리는 [[하극상]]을 저질렀다.''' 결과적으로는 철수가 정답이었더라도 조조에게 의견을 말해서 설득했어야지 제멋대로 일을 처리했다는 얘기다.[* (연의에 한해) 조조군에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사들은 순욱처럼 자결하거나 순유처럼 화병이 들어서 몸져누웠을 뿐 드러내놓고 조조를 거스른 적은 없었다. 반면 양수와 비슷하게 얽히던 공융 또한 퇴근하는 길에 '[[조조|어질지 못한 자]]가 [[도겸|어진 자]]를 치다니 어찌 이기겠는가'라고 대놓고 한탄하다가 누군가의 밀고로 목이 달아났다.] 실제 역사인 [[정사 삼국지]]에서는 양수가 한중에서 돌아와 몇 달이 지난 뒤에 참수되었으므로 연의나 다른 창작물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군기를 어지럽혔다는 명목으로 처형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삼국지)|조식]]의 철저한 브레인 겸 실드 역할을 하며 위나라 후계자 다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조조의 눈 밖에 나 처형된 것이다.''' 자세한 것은 [[양수(삼국지)|양수]] 문서로. 양수의 아버지 양표는 위나라의 구신(舊臣)이었기에 조조는 선물을 보내주며 위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표는 여전히 상심한 채 마치 '아들 잃은 소와 같은 기분'이라고 하자 조조도 후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적인 판단도 곁들여진 처형이었지만, 종종 감성적이 되는 조조의 특성 상 양표가 슬퍼하는 걸 보고 진짜 후회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노우지독]](老牛舐犢)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뜻한다. 재미있게도 조조는 평소에 닭고기에 한방 재료를 넣고 만든 보양식을 챙겨먹으며 건강관리를 했는데, 이를 후세에 '조조닭(曹操鸡 / 曺操鷄, Caocaoji, [[https://baike.baidu.com/item/%E6%9B%B9%E6%93%8D%E9%B8%A1/884338|바이두 백과사전]])'이라고 불렀다. 어째 닭하고 꽤나 연이 있는 듯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