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계통분류학 (문단 편집) === 선사 시대 분류법 === [[선사 시대]]부터 [[의술]]은 중요성을 인정받았으므로 자연스럽게 인체[[해부학]]과 [[생리학]]은 주목을 받고 번성하였다. 반면 분류학은 선사시대에는 대단히 융성했다가 명백이 끊어진 특이한 예에 속한다. 선사시대 수렵인들의 분류법은 '학문'으로서 성립하지는 않지만, 체계성은 현대에 비견할 만한 수준을 갖추었다고 한다. 마이어의 연구에 따르면 뉴기니 원주민과 분류학자의 생물분류가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Mayer,'Why did the heavens not darken?: the" final solution" in history',pantheon,1990] 수렵인의 연구는 인류학자이자 구조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대표한다.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문자를 지니지 않은 수렵 단계의 원주민들의 사고 체계를 조사한다. 이들이 현대인과 비견할만한 지식체계를 갖춘 분야는 분류법임을 도출해낸다. 주로 아메리카 수렵 원주민들의 분류 방식을 추적했는데, 수렵인의 분류법과 현대 분류학은 근본 원리만 다를 뿐이지, 구조와 체계는 매우 유사했다. 현대 분류학의 중요점은 발생이고, 수렵인 분류법의 중요점은 실용성과 주술성이라는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수렵인들은 세계 공통적으로 매우 정교한 체계를 가진다. 야생의 먹거리와 약품은 한정적이라 정확하게 분류해낼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헷갈려서 독이 있는 식물을 먹는다면? 수렵인은 끔살당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식용의 이유만이 아니라 의학이나 주술, 토테미즘적인 이유도 있다. 이 복잡한 분류법은 현대의 노련한 분류학자조차도 그 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들을 통해서 선사시대에도 고도의 분류법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수렵인 분류법은 농경사회로 변화하면서 점점 잊혔을 것이다. 한동안은 농경인도 수렵을 병행했으므로 분류법이 전래되었겠지만, 수렵의 필요성이 사라진 어느 순간에 명맥이 끊어졌던 것이다. 만약 고대까지 이것이 이어졌다면 현대 분류학의 양상은 현저히 달랐으리라. 다만 (비록 원류는 파악할 수 없더라도) 약초의 분류법은 전래되어, 독자적인 체계를 갖춘 [[약초학]]이 현대까지 근근히 이어져왔다. 이는 근대 이전까지 중요 의학품을 분류법에 의존해야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