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구려군 (문단 편집) == 여담 == 고구려군을 묘사한 중국의 사료, 특히 [[고구려-당 전쟁]] 시기의 사료들에서는 고구려군을 대단히 위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사서에서는 적군의 강성함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했기 때문에 XX가 두려워하였다"라는 식으로 간접적인 제시를 하는 편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시작된 이 제시법은 "적이 강성한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것은 한국의 사서인 삼국사기 등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다음과 같은 묘사방식을 택했다. >...(전략)...等帥兵, 來攻北城, 七日而拔之, 移攻南城, 城中危恐... >...(전략)...등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북성을 공격하여 7일 만에 빼앗고 남성을 공격하니 '''성 안에서 위태롭고 두려워하였다.''' >---- >삼국사기 권제25 백제본기 개로왕 21년 9월자 기사 그런데 중국의 사서에서 매우 일관되게 이와 같이 묘사하지 않는 존재가 딱 하나 있는데 바로 [[흉노]]다. 흉노군의 군세에 대해서는 중국 기록에서 보통 "~~가 두려워하였다"라고 기록하지 않는다.[* 개별 전투의 전황을 묘사할 때는 쓰긴 한다.] 대신 흉노군의 군세 그 자체를 매우 강성하게 묘사한다. 이는 흉노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가 중국 전체에서 보편적이기 때문에, 굳이 누군가가 두려워했다고 묘사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두려워했을 것이 너무나 뻔한 적수였기 때문이다. > 당시 한나라 군대는 [[항우]](項羽)와 서로 대치하느라 '''중국이 전란으로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에''' 묵돌이 스스로 강성해질 수 있었고,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군사만도 30여 만에 달했다. > ---- > 《사기》 <흉노열전>(匈奴列傳) 중 흥미로운 것은, 이와 비슷하게 기술되어 군세 그 자체가 강성하게 묘사된 군대는 중국사에서 몇 없는데, [[주필산 전투]]에서의 고구려군은 이와 같이 노골적으로 그 군세가 매우 강성하게 묘사된다. >'''15만 군대가 내달리고 깃발이 30리에 뻗쳤다.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닿은 것이 누런 뱀이 흙먼지를 토하듯 하였고 기병들이 들판을 뒤덮은 것이 마치 붉은 개미떼와 같았다'''(有徒十五萬, 連旗三十里. 烟火稽天, 若黄虵之吐霧. 彀騎横野, 邁赤蟻之爲羣) >---- >'''《전당문》 권7 태종황제 破高麗賜酺詔'''}}} 이것은 당시 흉노와 같이 중국에서 고구려군이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가 매우 보편적이었거나, 혹은 최소한 주필산 전투에서만이라도 당나라 수뇌부 내지 당나라군 전체가 고구려군이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보편적으로 갖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대목.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고구려, version=2796, paragraph=7)] [[분류:고구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