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국원왕 (문단 편집) == 시호 == [[시호]]가 여러 가지가 전해지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 강상왕(岡上王): 《삼국유사》 * 국원왕(國原王): 《삼국유사》 * 고국원왕(故國原王): 《삼국사기》 * 국강상왕(國岡上王): 《삼국사기》 * 국강상성태왕(國罡上聖太王): 〈모두루 묘지명〉[* [[염모(고구려)|염모]]의 손자 [[모두루]]는 [[광개토대왕]] 시기에 활동했으므로 염모 본인은 4세기 초중반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시기에 국강상(國罡上)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왕호를 사용했던 [[고구려]] 국왕은 고국원왕밖에 없다는 사실에 기반한 해석이다.] * 소열제(昭列帝): 《수서》 〈동이열전〉[* "[[동천왕|위궁]]의 [[미천왕|현손]]의 아들을 소열제라고 한다(位宮玄孫之子曰昭列帝)"고 기록되어 있다. 소(昭)는 고국원왕의 이름 사유(斯由) 또는 쇠(釗)의 다른 표기인 듯하다.] '강상(岡上)'과 '원([[原]])'은 같은 뜻으로 여겨진다.[* 《[[일본서기]]》에는 "[[안원왕|누타]](香岡) 스(上) 오리코케(王)" 등 고구려식 [[훈독]]을 음차한 표기가 일부 남아있다. [[고구려어]]에서 '둑' 또는 '언덕'을 가리켰던 어휘는 '토(吐)'로 추정되므로, '강상(岡上)'과 '원(原)'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고([[故]])'의 경우 [[장수왕]] 대에 [[수도(행정구역)|수도]]를 [[평양성]]으로 바꾸면서 '국강상(국원)'의 앞에 '고'를 붙인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고국천왕]]이나 [[고국양왕]]의 경우도 같은 추측이다. 국강상/국원 등의 지명은 [[왕릉]]이 위치한 곳을 가리킨다. 따라서 [[고구려]] 당대에 사용되었던 정식 왕호는 본래 국강상성태왕(國罡上聖太王) 또는 국원성태왕(國原聖太王)이었다가, 427년 [[장수왕]]이 평양성으로 천도한 이후에는 고국강상성태왕(故國岡上聖太王)/고국원성태왕(故國原聖太王) 정도로 자리잡았을 듯하다. 여기서 고국강상/고국원과 성태왕 사이에 업적이나 칭호가 더 들어갔을 수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태왕]](太王)호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으나, 태왕호의 여러 이표기 중 몇몇이 [[미천왕]]과 고국원왕 대의 기록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