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담(북제) (문단 편집) === 장남 고위에게 양위하다 === 조정(祖珽)은 화사개에게 그의 운명이 무성제와 엮여 있기 때문에 무성제가 붕어하면 화사개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황제 자리를 황태자 고위에게 물려주어 황후 호씨와 황제 모두에게 잘 보이자고 했다. 화사개는 이에 동의하여, 천문을 보고 점을 쳐보니 운이 황제보다는 황제의 아버지에게 있다고 보고했다. 여름, 무성제는 이 말을 듣고 그의 황위를 8살난 황태자 고위에게 물려주었다. 이에 고위의 아내인 곡률씨는 황후가 되었고, 무성제는 태상황제가 되었다. 무성제는 황제에서 퇴위를 하긴 했지만, 신제 고위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은 그대로 자기가 했다. 하지만 무성제와 황후 호씨의 3남 고엄(高儼) 편에 서있던 사람들은 불만을 가졌는데, 고엄이 황제 고위보다 어리긴 했지만 훨씬 더 총명했고 유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 고위가 황제가 되었는지 의아해했고, 무성제와 황후 호씨도 고위를 폐위하고 고엄을 황제로 세우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566년, 화사개와 조정은 [[고징]]의 3남 하간왕 고효완(高孝琬)에게 누명을 씌우고 반란 혐의로 고발했다. 무성제는 고효완을 사로잡아 심한 [[고문]]을 했는데 결국 다리를 부러뜨렸다. 고효완은 결국 이 상처로 인해 사망했고, 고효완의 다섯 번째 동생 안덕왕 고연종(高延宗)이 너무 슬피 울었다. 이에 무성제는 고연종을 체포해 고문을 가했으나,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 567년, 조정은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싶어했다. 그는 조언심(趙彥深), 고문호, 화사개를 부패와 [[붕당]]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이전에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 스스로 방어할 수 있었고, 조정은 [[역관광]]당했다. 무성제는 조정을 체포하고 심문하며 그에게 태형 200대를 선고하고 옥에 가두었다. 옥에서 피운 향으로 인해 조정은 결국 눈이 멀었다. 568년, 무성제가 병이 들자 관료인 서지재(徐之才)가 그를 돌보며 건강을 회복시켰다. 그래서 무성제의 건강이 회복된 후 화사개의 지위가 서지재보다 낮아지게 되었고, 결국 화사개는 서지재를 연주(兗州)자사로 내보냈다. 겨울, 무성제는 다시 갑자기 병이 들었고, 서지재를 소환했다. 하지만 서지재가 도착하기 전에 무성제는 화사개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붕어했다. 사후에 영평릉(永平陵)에 안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