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래잡이 (문단 편집) == 역사 == 고래는 한 마리만 잡을 수 있다면 고기와 실용적으로 쓸만한 부산물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해안가에 정착한 인류의 주요 사냥 대상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울산광역시]]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포경 장면을 통해, 인류가 오래전부터 포경 노하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는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관련 묘사이기 때문에 현재《[[울산 반구천 일대 암각화]]》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초기 포경업은 주로 해안가에서 이뤄졌다.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몰려나가 고래에게 집단으로 작살을 던져 죽이는 방식이었다. 지난 수천년간 인류는 대개 만에서 포경을 했다. 해안선을 따라 움직이는 고래를 만으로 몰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포경이 금지된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몇몇 고래들은 만과 가까워지면 먼 바다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물가가 아닌 먼바다로 나가면 [[상어]]나 [[범고래]] 같은 대형 포식자들에게 노출되는 위험이 크다. 그러면서도 이렇게까지 모험을 한다는 건, 포경에 대한 공포가 유전자 깊숙히 각인된 결과이다. --안습-- 하지만 연해에서 고래가 사라지면서 고래잡이 배들은 먼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먼바다에서 큰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고래를 발견하면, 작은 배를 내려 고래를 잡았다. 이런 방식이 미국식 포경이다. [[모비 딕(소설)|모비 딕]]에서 보는 바로 그 모습. 고래잡이의 대상에 있어 초기에는 고기, 기름 뿐 아니라 코르셋 따위를 만드는데 쓰이는 고래수염을 얻기 위해, 수염고래를 왕성히 잡았다. 하지만 수염고래 포획량이 줄어들고, 수염고래보다 질 좋고 많은 기름을 얻을 수 있는 [[향유고래]]를 발견하면서, 수염고래에서 향유고래를 포획하는 쪽으로 옮겨간다. 19세기에 이르러,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일어났고, 기계용 [[윤활유]]로 쓰이는 고래 기름의 수요가 급증한다. 그러면서 포경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였다. 그러자 [[포경선]]이 포경을 하면 인근 바다에 고래의 피가 흘러들어 붉은 빛을 띄는 광경이 아주 흔해졌다. 1864년에는 연안 포경기지에서 폭탄을 장착한 작살로 단번에 고래를 잡는 노르웨이식 포경이 시작되었다. 사체에 공기를 주입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죽으면 가라앉기 십상이던 [[흰긴수염고래]]같은 대형종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연안에서 고래가 줄어든 뒤에는 고래의 대규모 서식지인 남빙양에서 주로 포경이 진행되었다. 이 지역 일부 포경기지에서는 노르웨이식 포경이 잔존했다. 하지만 고래를 가공하는 대형 모선과 포획을 담당하는 포경정, 보급선과 기름을 저장하는 유조선 여러 척이 모여 어업을 하는 모선식 포경이 주가 된다. 심지어 고래 탐색을 위해 헬리콥터를 탑재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척을 대동해 포경을 하는 모선식 포경은 미국식 포경의 뒤를 이었다고 볼 수 있다. 18-19세기, [[보스턴]]-[[뉴포트]]-[[프로비던스]]의 상인 카르텔 주도 하에 [[코네티컷]] ([[뉴런던]])과 [[메사추세츠]] ([[낸터켓]]) 등 북봉부 일대를 중심으로 성황을 이루던 미국의 포경 산업은 20세기 들어 고래의 가치나 개체수가 모두 감소하며 쇠락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미국식 포경선은 1926년까지 활동하였다. 19세기 미국 포경 산업에서 유래한 소설이 바로 [[모비 딕]]이다. 20세기 초까지 고래사냥은 기름이 목적이었다. 고래 고기를 식용으로 쓰는 몇몇 나라 빼고는 고래 고기는 버려졌다. 하지만 고래 자원이 줄어들었기에 고기도 삶아 기름을 짜낸 뒤 버리거나 사료 따위에 쓰이게 되었다.[* [[고래고기]] 자체는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식감을 가지고 있다. 갓 해체한 고기는 별미로 여겨져서 선원들이 자주 먹었지만 육지까지 가져가진 않았다. [[에버랜드]] 사파리에서도 80년대 중반까지 고래고기를 동물들에게 급식용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42838&cloc=rss|isplus|soccer|1976년 8월 2일 중앙일보 기사]]] 더군다나 IWC에서는 고래 포획 수를 줄이기 위해 잡은 고래는 모든 부위를 버리지 말고 사용하도록 강제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