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문화 (문단 편집) == 회화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려 아미타여래도.jpg|width=27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려시대 관경서분변상도 그림.png|width=36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png|width=292]]}}}|| || {{{-2 ''{{{#000000 '''《아미타여래도》'''[br]2035 x 1051mm, [[1286년]], [[고려]], 자회(自回)''[* 고려 후기의 화공, 생몰년 미상. 화면 좌우 모서리에 적힌 화기(畵記)에 의하면 봉익대부(奉翊大夫) 겸 좌상시(左常侍)였던 고려의 귀족 염승익(廉承益, ?~1302)이 자신이 임종할 때에 아미타불을 만나 즉시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자회에게 하여금 이 불화를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일본은행]] 소장}}}''}}}. || {{{-2 ''{{{#000000 '''《관경서분변상도》'''[br]비단에 색, 1505 x 1132mm, [[1300년]]경, [[고려]], 일본 [[쓰시마]]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 {{{-2 ''{{{#000000 '''《미륵하생경변상도》 中'''[br]비단에 색, 1718 x 921mm, [[1350년대]] 이전, [[고려]], 일본 신노인(親王院) 소장}}}''}}}. || 회화 분야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으며 [[수월관음도]]를 비롯한 불교 회화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후대 왕조인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현존하는 [[고려]] 불화 약 160점의 대부분은 국내보다는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 분포해 있다. 고려 귀족들의 개인 불당에 안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불화들은 관음보살,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미륵보살 등의 다양한 도상을 표현했으며, 금니를 포함한 여러 안료를 활용하여 세밀하고 화려하게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또한 관경서분변상도, 미륵하생경변상도, 관경십육관변상도 등의 작품에서는 불교의 신들뿐만 아니라 [[고려]] 왕족과 서민들의 모습도 포함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의복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불화 속에 그려진 건축물들도 [[고려]] 후기의 건축물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불교 회화 이외의 작품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나 [[공민왕]]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천산대렵도가 남아있으며, 비교적 최근 고려 시대 봉분에서 벽화가 발견되어 관제와 문인화로의 계승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려 시대 고분은 고구려 고분의 전통을 [[http://blog.naver.com/binna1012/150152114295|이어받아]] 프레스코 기법으로 사신도와 별자리 그림, 풍속화가 그려졌으나 화풍에 있어서는 고구려 당대의 것보다는 고려 당시에 유행하던 화풍을 따랐으며, 신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십이지신이 같이 그려진다. 별자리 그림도 거창 둔마리 고려 고분 벽화를 보면 고구려 시절처럼 천문도 전체를 그리기보단 북두칠성과 삼태성 등 중요하게 여긴 별자리 일부만 그렸다. 이미 고구려 중후기 때부터 고분 벽화의 양식이 변화하여 풍속화보다는 도교, 불교 계통 위주의 벽화가 그려지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