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왕조 (문단 편집) == 왕족들의 후일담([[야사(역사)|야사]]) == 조선의 반체제인사(?) 남효온의 《추강냉화》나 야사 수집가 이긍익의 《[[연려실기술]]》등 각종 야사에 의하면, 고려가 멸망하자 왕씨들이 다시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까봐 겁먹은 태조 이성계가 [[왕(성씨)|왕씨]]들을 불러 섬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구라친 뒤 배에 구멍을 뚫어 몰살시켰다. 하지만 일부 왕씨들은 아시다시피 전씨(全, 田)나 옥씨(玉), 아니면 군주를 상징하는 용씨(龍), 심지어는 심문을 받게 되자 당황해서 "네?"라고 반문하여 내씨(乃) 등으로 성을 고쳤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야사다. 물론 왕씨들을 대거 몰살시킨 것은 맞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3년에 왕씨 중 한 명이 연루된 반역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때 사헌부와 형조 등에서 왕씨들을 몰살하여 화근을 제거하자고 거듭 상소를 올리자 고려의 왕족이 불안했던 태조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명을 내려 그해 3월에 강화도와 거제도에 귀양가 있던 왕씨들을 죄다 물에 던져 죽이게 하였다. 대신 한 집안만은 남겨서 제사를 이어가게 했다. 그것도 자기 사돈 집안. 우왕과 동명이인인 왕우 집안으로, 조선 초기 잘먹고 잘살다가 [[무인정사|왕자의 난]]에 휘말려 멸문당했으며 이후 조선은 고려 군주의 제사를 위해 방계 왕씨를 찾아야 했다. 이렇게 남겨서 왕씨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수륙재를 봄과 가을마다 지내게 하였다. 이성계가 왕씨를 멸족시킨 그날 밤, 태조 왕건의 [[귀신]]이 그의 꿈에 나타나 "왜 죄없는 내 후손까지 죽이느냐? 너도 죽을래?"라는 협박[* 이후 이성계는 수도가 개경이라 이런 꿈이 나타났다고 여겨 한성으로 옮긴다.]에 혼난 이성계가 왕씨 [[족보]]에서 한 장을 찢어 그 왕씨들은 무죄방면(?) 해주었다는 야사도 있다. 이 일로 인해 조선시대 내내 출세한 왕씨가 드물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고등학교 때 [[왕방연]]이란 금부도사가 지은 시조를 배운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후의 고려 왕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개성 왕씨]]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