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1990년대]] 이후 == [[1991년]]에는 의과대학이 녹지캠퍼스로 이전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1996년]]에는 아산이학관이, [[2000년]]에는 생명과학관이 준공되어 이공대의 시설도 점차 제대로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1989년]] 초중고생 과외 수업이 자율화되고, 1994년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이후에는, [[강남 8학군]] 출신 학생들과 [[외국어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의 비중이 급증했다. 부유층--금수저-- 학생들과 여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캠퍼스 분위기가 많이 화사해지고 세련되어져 갔다. 물론 그에 반비례하여 고려대학교의 학생운동은 점차 쇠락했다. 고대생들의 주된 관심은 정치, 인간관계, 동아리에서 차츰 학점, 고시, 취업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사실 취업, 학점으로의 관심은 [[1997년 외환 위기]]와 [[법학전문대학원]] 체제 이후 대학들의 공통적인 상황이다-- 한편 개교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2002년]] 3월에는 기존의 대운동장 부지에 지하주차장과 열람실 및 각종 편의시설, 잔디공원이 조성된 중앙광장이 준공되면서 국내 대학 최초로 지상에 자동차가 없는 쾌적한 캠퍼스가 구현되었다. 이 즈음 [[2000년]]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어 [[안암역]]과 [[고려대역]]을 통한 등교 및 출근이 가능해졌는데, 이로 인해 학교 문화와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 [[2003년]] 2월~[[2006년]] 12월에는 [[어윤대]] 총장의 개혁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교내 영어강의가 4%에서 34%로 확대되자, 그에 힘입어 세계대학 랭킹에서의 순위가 급격히 상승했다. 그러나 교주(校酒)를 막걸리에서 와인으로 바꾼다는 둥, 캠퍼스에 쇼핑몰을 들여온다는 둥 하는 무리한 개혁은 학내외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사후 어윤대 전 총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고려대학교 재단과 [[성균관대학교]] 재단을 합병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한다.[[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0102800051|관련기사]]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고려대학교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러 캠퍼스에 방문한 날 일부 학생들의 학위 수여 반대 시위로 인해 논란이 일면서 프로젝트도 백지화 되었다고 한다. [[2005년]] 교육부의 고려대학교와 [[고려대학교병설보건대학]]의 통합 승인으로 [[2006년]]부터 고려대학교병설보건대학의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었다. 이후 2006년에 고려대학교 본교 서울캠퍼스(당시 안암캠퍼스) 산하 4년제 학부로 보건과학대학이 신설되었다. 고려대학교병설보건대학은 기존 병설보건대 학적자들을 위해 [[2011년]]까지 존속하다 폐교되었다. [[2007년]]에는 경영대학 출신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후 다수의 동문들이 이명박 밑에 줄서기를 하며 대통령 보위에 안간힘을 다하여, 다른 대학교 출신들의 반감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이른바 '고소영' 라인] 결국 이명박 퇴임 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동안 고대 출신들이 오히려 고위 관직에서 소외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초창기에는 성시경 라인(성균관대-고시-경기고) 및 육사 출신들이 많이 중용됐다.] [[2017년]] 3월 1일부터 학칙 개정으로 인해 기존의 안암캠퍼스가 서울캠퍼스로 명칭이 변경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