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장 (문단 편집) === 그리피스의 한국 방문 여부 === 그리피스는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1차 방문시기는 밝혀지지 않았고 2차 방문 시기는 1926-27년 사이이다. 한때 학계는 그리피스의 1차 방문을 사실로 여겼다. 그러나 그 이후, 그리피스가 1871년에 [[신미양요]]가 있을 당시 조선에 방문하였다고 주장했던 [[정수일]] 교수를 포함한 학계는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2618|최근 여러가지 연구를 하고 내용을 검토한 결과 그렇지 않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전에도 [[문일평]]이 <은자의 나라>에 실린 식탁이나 두발 모습 같은 그림들이 한국적인 것이 아니란 점을 증거로 그가 한국에 오지 않고 일본에 앉아서 쓴 것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었다. 특히 <은자의 나라>에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경우가 많다는 것도 그 신뢰성을 의심하게되는 주요 근거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리피스가 고대부터 1868년까지 부산이 대마도주의 영지였다는 잘못된 정보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미카도의 제국 같은 저서에서는 칭기즈칸이 일본인이라는 의견을 수용하기도 하는 등, 일본의 주장에 치우친 듯한, 신뢰성에 의문을 가게 만드는 저작들도 존재한다.( Fusan has been held by the Japanese from very ancient times. Until 1868 it was a part of the fief of the daimio of Tsushima.(p.202)).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칭기즈칸=요시츠네설 문서의 10번 문단 참조 [[https://ja.wikipedia.org/wiki/%E7%BE%A9%E7%B5%8C%3D%E3%82%B8%E3%83%B3%E3%82%AE%E3%82%B9%E3%82%AB%E3%83%B3%E8%AA%AC#%E3%82%B0%E3%83%AA%E3%83%95%E3%82%A3%E3%82%B9|#]] 무엇보다 그리피스는 역사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을 전공한 학자로 일본 정부의 초빙으로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의 전신인 도쿄가이세이학교(東京開成學校)에서 강의했으며, '''일본이 주체가 되어 조선에서 미신과 전제왕권을 몰아내고 서구문명과 기독교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매우 [[와패니즈|친일적인 인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또한 개항 이전에는 조선 이상으로 서구문명과 기독교를 거부하고 있었다. 당장 존황양이파들조차 그닥 개방적인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는 '''조선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의 자료들에만 의존해 한국의 역사와 풍습에 대해 서술'''했는데, 한국에 대한 편견에 기초하여 일부 설화의 내용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양 왜곡하여 서술했다는 점에서 그의 자료는 방한 여부의 논란과 상관없이 비판적인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16/2017021603110.html|[아알모모] 우리가 늙은 부모님을 산에 버렸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