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복장 (문단 편집) == 상세 == 123년 음력 10월 우보에 임명되어 좌보,,,左輔,,, [[목도루]],,,穆度婁,,,와 [[차대왕|수성]],,,遂成,,,과 함께 국정에 참여했다.[*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levelId=sg_015_0020_0430&types=o|삼국사기 권 제15 고구려본기 제3 태조대왕 71년 10월]] 「七十一年 冬十月 以沛者穆度婁爲左輔 髙福章爲右輔 令與遂成叅政事」] 132년 음력 7월에 수성과 그의 측근들이 왜산,,,倭山,,,에서 회합하여 찬탈을 획책했는데, 이를 접한 좌보 목도루가 칭병하여 칩거한 까닭에 고복장은 역모를 알지 못했다.[*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levelId=sg_015_0020_0470&types=o|삼국사기 권 제15 고구려본기 제3 태조대왕 80년 7월]] 「八十年 秋七月 遂成獵於倭山 與左右宴... 於是 左輔沛者穆度婁知遂成有異心 稱疾不仕」] 142년 음력 9월에 태조대왕이 꿈을 꾸었는데, 표범이 호랑이의 꼬리를 끊었다. 이에 길흉을 물으니 「호랑이는 모든 짐승의 으뜸이고 표범은 같은 종류이면서 작은 것이니, 왕족 가운데 아마도 대왕의 후계를 끊으려고 모의하는 자가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라고 간하자 왕이 언짢아 하며 고복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고복장은 「착하지 않은 일을 하면 길,,,吉,,,한 것도 변하여 흉,,,凶,,,한 것이 되고, 선한 일을 하면 재앙도 도리어 복이 됩니다. 지금 대왕께서 나라를 집안처럼 근심하시고, 백성을 자식처럼 어여삐 여기시니, 비록 작은 이변이 있더라도 어찌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levelId=sg_015_0020_0500&types=o|삼국사기 권 제15 고구려본기 제3 태조대왕 90년 9월]] 「王夜夢 一豹齧斷虎尾 覺而問其吉凶 或曰 虎者百獸之長 豹者同類而小者也 意者王之族類殆有謀絶大王之後者乎... 荅曰 作不善則吉變爲凶 作善則災反爲福 今大王憂國如家 愛民如子 雖有小異 庸何傷乎」] 146년 음력 7월에 수성과 그의 측근들이 왜산에서 회합하여 찬탈을 결의했다.[*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levelId=sg_015_0020_0510&types=o|삼국사기 권 제15 고구려본기 제3 태조대왕 94년 7월]] 「九十四年 秋七月 遂成獵於倭山之下 謂左右曰 大王老而不死 吾齒即將暮矣 不可待也 惟願左右爲我計之 左右皆曰 敬從命矣」] 같은 해 10월에 고복장이 태조대왕에게 「수성이 장차 반란을 일으키려 하니 청컨대 먼저 그를 죽이십시오.」라고 간했지만 왕은 수성에게 선양할 뜻을 밝혔다. 재차 간하기를 「수성은 사람됨이 잔인하고 어질지 못하여, 오늘 대왕의 선위를 받으면 내일 대왕의 자손을 해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단지 어질지 못한 동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만 알고, 무고한 자손에게 환난이 미치는 것은 알지 못하십니다. 대왕께서는 이를 깊이 헤아리시기 바라옵니다.」라고 말했다.[*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levelId=sg_015_0020_0530&types=o|삼국사기 권 제15 고구려본기 제3 태조대왕 94년 10월]] 「冬十月 右輔髙福章言於王曰 遂成將叛 請先誅之 王曰 吾旣老矣 遂成有功於國 吾將禪位 子無煩慮 遂成之爲人也, 忍而不仁, 今日受大王之禪, 則明日害大王之子孫. 大王伹知施惠於不仁之弟 不知貽患於無辜之子孫 願大王熟計之」] 147년 음력 3월 수성이 왕위를 승계받고 2년이 지난 때에 고복장은 사형을 당했다. 죽음에 임하면서 「애통하고도 원통하도다! 내가 그 당시 선왕의 가까운 신하로서 어찌 반란을 일으키려는 무리를 보고도 잠자코 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한스럽게도 선왕께서 내 말을 듣지 않으셔서 이 지경에 이르렀도다. 지금 임금은 이제 막 왕위에 올라 마땅히 정치와 교화를 새롭게 하여 백성에게 보여야 할 것이거늘, 의롭지 않게도 한 사람의 충신을 죽이려 하는구나. 내가 무도한 이때에 사는 것은 빨리 죽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분하고 애석하게 여겼다.[*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levelId=sg_015_0030_0030&types=o|삼국사기 권 제15 고구려본기 제3 차대왕 2년 3월]] 「三月 誅右輔髙福章 福章臨死嘆曰 痛哉 寃乎 我當時爲先朝近臣 其可見賊亂之人 黙然不言哉 恨先君不用吾言 以至於此 今君甫陟大位 冝新政教 以示百姓 而以不義 殺一忠臣 吾與其主於無道之時 不如死之速也 乃即刑 逺近間之 莫不憤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