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분문화 (문단 편집) ==== 고구려의 하위 고분 ==== 고구려 고분문화 전개 상에서 4세기 후반 석실의 채용이 보편화되면서부터는 소규모의 적석총 및 봉토분의 축조가 두드러진다. 다만 그 명칭이 현재도 완벽히 정의되진 않았는데 보고자 측인 중국 쪽의 명칭과 개념을 존중하여 여기서는 동실묘라고 부른다. 동실묘라는 것은 구멍 동(洞)자를 써서 동굴처럼 또는 소형의 굴처럼 만들었다는, 다시말해 '작다'라는 의미가 전제된 묘제를 뜻한다. 똑같이 적석총의 형태로도 봉토분의 형태로도 존재한다. 또 묘실의 수직적 위치가 대체로 지상의 바로 위에 있으며 석실의 높이 또한 1m가 체 되지 않는 소형의 석실분들을 지칭한다. 관련 용어를 정의할 때 묘제 또는 분제의 특징을 잘 설명해야하는데 이게 워낙 많은 전제가 들어가 있어서 타당하지 않다는 함정이 있다. 여하간 이러한 동실묘들이 4세기 후엽을 전후한 시점부터 적석총의 옆에 쪼르르(...) 군집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크기가 작은 만큼 훼손도 심해서 정보를 정식 발굴없이 획득하기가 힘들다. 대국적인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측에서 이 동실묘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본 바 있는데 전체 고분들의 비교를 통해서 [[고구려]]의 [[고구려 #s-6.2|13~14개 관위]]와 연결시켜 동실묘들이 최 하위에 해당하는 계층의 무덤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동실묘의 구분을 따로 두진 않고 그냥 모든 석실 및 고분을 분석해 위계를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도굴|유물이 거의 출토되지 않았으므로]]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규모만으로 역사적 사실에 맞게 어느 관위에 해당한다고 까지 확정짓지는 않는다. 이러한 계층성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소수림왕]]대의 율령반포를 즈음한 일련의 정비 속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