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우석(1984)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일고]] 시절 145km/h를 웃도는 직구와 각이 큰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여 고교 동기 [[김대우(1984)|김대우]]와 원투펀치로 맹활약했다. 이러한 활약에 따라 연고 팀 [[KIA 타이거즈]]는 둘 중 누구에게 1차 지명권을 쓸까 고민하다가 고우석을 뽑기로 결정했고, 계약금 2억 5000만원에 [[KIA 타이거즈]]와 계약하며 입단했다.[* 한편 연고 팀 KIA의 1차 지명을 받지 못한 김대우는 [[롯데 자이언츠]]에 2차 1라운드로 지명되었으나 입단 협상을 거부하고 [[고려대학교 야구부|고려대학교]]에 진학해버린다. 참고로 이 당시 롯데가 김대우에게 제시한 계약금은 무려 4억 5000만원으로 고우석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다.] 김대우와 고우석이 고3이던 2002년 고교야구 판도는 광주일고와 천안북일고가 천하를 양분했다. 광주일고는 첫 번째 대회와 두 번째 대회인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대통령배]]와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청룡기]]를 제패했고, 천안북일고는 뒤이어 열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봉황대기]],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화랑대기]], [[전국체전]]의 정상에 올랐다.[* 여담으로 이 당시 김대우, 고우석보다 원래 1년 선배였으나 유급하여 동기가 된 광주일고 중견수는 [[이대형]], 3루수는 2학년 [[모창민]].][* 천안북일고는 에이스 [[안영명]]을 필두로 유격수 [[나주환]]이 주장을 맡아 중심을 잡고, 2학년 [[김창훈(1985)|김창훈]]이 투수진을 뒷받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