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우영 (문단 편집) == 사망 == 이렇게 투병하던 그는 2005년 4월 25일, 일산병원에서 지병인 대장암이 재발하여 사망했다. 이후 수많은 만화가들과 만화가 지망생들이 고우영을 추모하며 추모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문화관광부]]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장례 미사|장례 미사]]는 일산 [[마두동성당]]에서 거행한 후 유해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되어 청아공원에 모셔졌다. [[허영만]]의 [[꼴(만화)|꼴]]에 나온 관상 분석에 따르면 얼굴 전체가 짧고 눈빛이 약했지만 눈썹이 나아서 그나마 오래 산 거라고 나온다. 하지만 그의 집안에 대대로 [[유전병]]이 있어서 오래 산 이가 없다는 점 때문에[* 아버지는 쉰살을, 두 형은 마흔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자신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전부터 느꼈다고 한다. 확실히 아버지나 형들에 비해 오래 산 거지, 허어나 박부성 같은 1938년생으로 2022년에도 생존한 동갑내기 만화가들에 비하면 단명한 편이다. 심수회 후배 [[이정문(만화가)|이정문]][* '심술 1000단 심똘이'와 한국 로봇 만화 명작인 '[[철인 캉타우]]'를 그렸다.]의 회고를 봐도 고우영은 오래 전(80년대)부터 "우리집 남정네들은 유달리 일찍 갔어. 내가 장수하는 건지."라고 말했으며, 죽기 한달 전 여러 만화가들이랑 같이 간 마지막 여행에서는 사진을 찍으면서 미소와 같이 "정문아...이거 영정 사진이니까 잘 찍어줘."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오래 못가 자신이 죽을 걸 각오한 모양. 그래도 이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더니만 "아, 산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인데..."이란 말도 하며 아쉬워했다. (2005년에 몇 달만 발행하다가 폐간한 월간 계간만화라는 잡지에서 이정문이 그린 고우영 추모 만화에서 발췌) 이 특집 추모 만화에서 이정문은 오래전, 선배 고우영이 그려준 [[관우]] 그림을 액자에 담아 내 화실 벽에 걸어뒀는데 고우영이 사망한 날에 그 액자가 갑자기 떨어졌다. '''3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떨어지지 않던 그 액자가 떨어진 날'''이 공교롭게도 그날 떨어져서 '어? 이상하다... 혹시 선배님에게 무슨 일이 있나?' 불안해했고 그리고 얼마 안 가 사망한 소식을 전화로 듣고 그 액자를 안으며 "선배님, 가시는 걸 알린 건가요!" 라며 엉엉 울었다고 회고했다. 장례식에 비도 많이 와서 이정문은 고우영 선배님 가시는 걸 하늘도 슬퍼하는지 싶었다라고 마지막으로 만화를 끝냈다. [[http://m.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9251.html#cb|사망 기사]] 2015년 부천만화박물관 고우영 10주기 추모 이벤트에서 아내가 회고하길 "살아 생전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욕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물론 아이들이 잘못하면 꾸짖고 매질이야 했지만 정해진 수만 [[종아리]]를 몇 대치고 잘못을 깨우치게 했을 뿐. [[술]]에 된통 취해도 절대로 나에게도 아이들에게 [[구타]]나, [[욕설]]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공부해라느니 [[강요]]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아들인 고성언을 비롯한 자식들도 아버지는 취해도 우리를 함부로 때린 적도 없고 실수로 욕하면 우리나 어머니에게 곧바로 사과하셨다. 공부하란 강요도 안하고 하는 일을 알아서 하려무나 이렇게 말할뿐이었다고 회고했었다. 당시 [[가부장제|가장들 대부분이 매우 권위적이었던 걸]] 생각하면 여러가지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욕을 맛깔나게 잘하는 상남자 캐릭터들을 많이 등장시켰지만 그걸 그리는 작가는 정 반대의 인간상이었다는 말이 된다.] 이런 됨됨이는 후배들에게도 똑같은데 친했던 [[이정문(만화가)|이정문]]은 당시 회고하면서 30년 넘도록 친하게 지내면서 아무리 취하셔도, 후배들을 부려먹거나 [[군기]]같은 걸 매우 질색하고 욕을 정말 하지도 않은 분이라고 그린 걸 보면 군기같은 걸 질색하고 후배들도 매우 배려해준 성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만화[[평론가]] 장상용도 2009년 저서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 2004년에 낸 <한국의 만화가 18인>에서 더 보강하고 만화가들을 더 여럿 취재하며 낸 책이다. 2004년판에서 살아있을때 취재하던 [[박봉성]]과 고우영은 2005년 똑같은 해에 사망하고 [[신문수]]는 2021년, 박기정은 2022년에 차례로 사망했다.]에서 짓궂게 이야기하면서도 정다움이 많던 고우영을 추모했다.마치 전화로 "장기자! 전화번호 바꾸었으면 날래 날래 알려줘야 할거 아니야!"라고 짖궂게 말하던 목소리가 아른거린다고. 허영만도 꼴에서 고우영을 이야기하다가 '보고 싶습니다. 선배님...'이라고 아쉬움을 담아 작게 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