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은(시인) (문단 편집) === 서정주 비난 === * 등단 초기인 1960년대에는 등단할 때 자신을 밀어 준 미당 [[서정주]]를 스승으로 모시고 육친 같은 정을 나누었다고 표현될 정도로 가까운 관계로 지냈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에 가까이에 살며 자주 서정주를 찾아갔다고 한다. 아마도 뻔질나게 미당의 집 문지방을 넘나들었던 것은, 그의 특기인 '명사 사냥'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지, 그가 육친 같은 정을 나누었다고 언급하는 것은 이미 사로잡힌 악령에서 묘사된 바 '''몇 번 만나지도 않은 것이 사후에 육친의 정을 나눈 것 이상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처럼 매우 진의가 불분명한 발언이다. * 고은은 1970년대 저항시인으로 변모한 후 서정주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서정주가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자 완전히 연을 끊고 죽을 때까지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 2000년 연말 서정주가 사망하자 고은은 2001년 '미당 담론'을 발표하여 서정주를 비판했는데 제대로 된 학술담론이 아니라 철저한 감성팔이와 억지 논리의 산물이다. 여기서 고은은 ‘자화상’, ‘귀촉도’, ‘일본헌병 고 쌍놈의 새끼’같이 미당의 작품 중 친일과 상관없는 작품은 물론 친일 전력, 군사정권 협조, 개인 에피소드, 세계관, 철학 등 서정주의 모든 점을 트집 잡아 열심히 비난했다. 그 비판과 분석이라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들이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식인데, 예를 들어 친일과 상관없는 미당의 초기시 '자화상'의 첫 행 '애비는 종이었다'를 지적하며 서정주는 '노예 근성'에 쩔어있는 자라고 비난했고, 이어지는 구절 중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는 구절을 지적하며 "세상에 대한 수치가 결여된 체질"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노예 근성과 수치심 결여 때문에 나중에 권력에 편에 서서 일신의 안전을 유지하는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10518015001|#]] [[http://news.joins.com/article/4077868|#]] 고은이 한창 기세등등하던 시절이라 ‘용기 있는 행동’이란 호평이 많았지만, 그 당시에도 이미 '''미당 살아 생전에는 침묵하다 세상을 떠나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니 욕하고 나선다'''는 비판도 있었다. 고은의 주장대로 육친 수준으로 가까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60년대까지 도움을 여러 번 주었던 것은 분명한데 그런 서정주에게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감정적인 비난'''을 쏟아낸 것은 정상적인 인간의 처신이라 하기 힘들다. * 서정주 사후 고은은 서정주의 이름이나 그의 호인 미당을 입에 올리는 법이 없었다. 대신 [[그#s-4|'그 고유명사]]'라고 불렀다. "'''내 입에서 그 고유명사(미당 서정주)는 다시는 안 나옵니다. 그게 내 교양이죠'''."라고 말했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9/culture01.html|#]] * 언제나 권력을 가까이 했던 서정주는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행위를 했고, 해방 후 1950년대에 자청해서 [[이승만]] 평전을 썼다. 고은은 서정주의 이런 성향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까지는 서정주를 스승으로 모시며 '시의 정부(政府)'[*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포함하는 통치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라고 찬양하더니 1970년대 저항시인으로 돌아서 스스로 권력을 쥐게된 후 연을 끊었고, 서정주가 죽은 후 그를 부관참시했던 것이다. * 이 모든 걸 통틀어서 보면, 한마디로 고은은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서정주를 찬양했고, 그가 죽고 더 이상 반박을 못하게 되자 바로 돌아서서 그를 까내리는 식으로 철저하게 이용한 셈이다. 물론 서정주가 친일파였고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등 문제있는 행적을 보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고은의 이런 배은망덕한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은 본인의 주장처럼 서정주 생전 육친의 정에 비할 법한 깊은 사제 관계를 맺은 게 사실이라면, 오히려 '''서정주의 --문학적 재능은 하나도 안 받고-- 기회주의만 쏙 제대로 전수 받았다'''고 볼 만한 여지까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