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의사구 (문단 편집) === 만루에서 [[밀어내기(야구)|밀어내기]] 고의사구 === 타격감이 좋은 타자와의 승부를 극한으로 피하려 하는 경우에 벌어질 수 있는 사태가 바로 '''주자 만루에서 밀어내기 고의사구'''이다. "승부했다가 제대로 홈런 맞으면 4점, 장타를 맞으면 2~3점을 줘야 할테니, 차라리 한 점만 주고 만다" 라는 심산으로 하는 작전이다. [[http://www.baseball-almanac.com/recbooks/rb_wk3.shtml|이는 메이저리그 100년 역사에 단 7번 있었다.]] 메이저 리그에 발생 했던 일곱 번 중, 기록지를 제대로 집계한 1955년 이후로 한정하면 단 '''세 번.''' 1998년의 [[배리 본즈]]와, 2008년의 [[조시 해밀턴]], 2022년 [[코리 시거]]다.[* 이쪽은 아예 공도 안던진 자동 고의사구였다.] 다만, 기록상 명백하게 고의사구인 경우가 적을 뿐이지, 사실상 고의사구라고 볼 수 있을 만큼 대놓고 승부를 피하다가 볼넷을 내주는 경우는 흔히 있다. [[KBO 리그]]에서는 아직 만루 고의사구 기록은 없고, 아마추어 야구 기록으로는 1995년 대학야구 춘계리그 결승전에서 연세대 [[임선동]]이 한양대 [[강혁(야구)|강혁]]을 2아웃 만루에서 걸려보낸 게 유명하다.[* 그리고 다음 강혁 타석에서는 정면도전했다가 솔로홈런을 얻어맞았다.] 고교야구에서는 2002년 화랑대기에서 부산고 [[장원준]]이 동성고 [[김주형]]을 만루에서 고의사구로 내보낸 기록이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세 번 나온 기록인데, 그 중 일본시리즈에서 나온 것 하나를 제외한 두 개는 안타를 맞느니 한 점만 내주겠다는 심산에서 한 작전이 아니라, 팀 차원에서 타이틀 밀어주기를 한 결과라 메이저리그의 사례와는 많이 다르다. 첫 번째는 양대리그 체제 첫 해인 1950년 일본시리즈 6차전에서 이와모토 요시유키가 얻어낸 것으로, 2회와 3회 연타석 홈런을 친 쇼치쿠 로빈스의 이와모토를 [[치바 롯데 마린즈|마이니치 오리온즈]]가 5회 4점차 무사 만루에서 거른 사례다([[http://npb.jp/bis/scores/nipponseries/boxscore1950_6.html|공식 박스스코어]]).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성공해서 마이니치는 고의사구 이후 희생플라이로 인한 추가 1실점만으로 막아냈으며, 연장 승부 끝에 끝내기 실책으로 승리하여 우승한다. 두 번째는 1975년 10월 19일 이노우에 히로아키가 얻어낸 고의사구인데, 당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야마모토 코지]]가 0.319의 타율(451타석 144안타)로 1위였고 [[주니치 드래곤즈]]의 이노우에 히로아키가 0.318의 타율(465타석 148안타)로 2위였으나 안타 하나만 더 치면 타율 4모 차이로 이노우에가 1위가 되는 상황이었다. 야마모토는 시합에 선발출장하지 않았고, 그냥 선발출장하면 고의사구일 것이 뻔해서 이노우에도 선발출장하지 않고 3회초 무사 만루에서 대타로 나왔으나 결과는 공식전 첫 고의사구. 그리고 야마모토는 후반 대주자로 나와 전 경기 출장 기록을 챙겨갔다. 주니치는 한신과 한 경기가 더 남아 있었으나, 그 경기에서도 3타수 1안타[*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쳤기 때문에 467타석 149안타로 타율 약 2모 차이로 2위였고, 반드시 안타 하나를 더 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타석에서는 [[몸에 맞는 공]]으로 타율 1위를 놓치고 결국 야마모토가 수위타자가 되었다. 세 번째는 1984년 10월 3일 [[우노 마사루]]가 얻어낸 고의사구인데, 당시 주니치 드래곤즈의 우노 마사루와 [[한신 타이거스]]의 [[카케후 마사유키]]가 37홈런씩을 기록하며 홈런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마침 마지막 두 경기가 주니치와 한신의 맞대결이었던 것. 게다가 한신은 이미 B클래스가 확정된 상황이어서 경기 승패보다 카케후의 홈런 타이틀이 훨씬 더 중요한 상황이었고, 주니치 감독 [[야마우치 카즈히로]]도 반드시 우노에게 홈런왕 타이틀을 따게 해 주려고 마음먹은 상황이었다.[* 2016년 우노가 카케후를 상대로 한 [[https://www.tokyo-sports.co.jp/baseball/503214|인터뷰]]에서 카케후가 야마우치 감독에게 그런 소리를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마지막 두 경기에서 우노와 카케후는 나란히 10타석 연속 볼넷을 얻어내며 공동 홈런왕에 올랐고, 우노는 10월 3일 7회 2사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하나 얻어내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두 명이 얻은 볼넷이 전부 다 고의사구로 기록된 건 아니지만 사실상 전부 고의사구나 다름없었고, 이때 기록된 10연타석 볼넷은 당시 일본 신기록이었다. 그리고 둘 다 홈런왕 확정 후의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굉장히 부끄러워 했다. 참고로 이 10타석 연속 볼넷 기록은 4년 후인 1988년 [[마츠나가 히로미]]가 11타석으로 경신하였고, 그 중 공식 기록으로 10타석 연속 고의사구가 포함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