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전 (문단 편집) == [[진입장벽|입문 난이도]] == 기본적으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지만, 대체로 배경 지식이 많이 필요하며,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다. 예시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한국어판(도서출판 길) 해제를 읽어보자. >수식 어구가 없는 그의 경제적 표현은 압축적이고 생략이 많고 함축적이며 숨어 있는 전제들을 지니고 있어 그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가 요청된다. 또한 암호 찾기와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이, 게임의 법칙을 늘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만 한다. 어느 시인(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의 표현처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 다는 것은 '마른 건초를 씹는 것'과 같다. 이렇듯 수사적 어구를 사용하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이란 작품을 남긴 것은 아이러니하다. >논의의 전환이 너무도 돌연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읽는 것은 포장되지 않은 거친 자갈길을 급하게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양옆에 펼쳐진 경치를 구경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독자들은 그 길에서 그가 사용하는 기술적 용어에 질리고, 어색한 구문에 놀라고, 때로는 저자의 불친절함에 넌덜머리를 내기도 하고, 철학적 문제의 난해함에 지쳐버리게 되어 비전문가들에게서 진리를 향한 거친 자갈길을 아리스토텔레스와 더 이상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앗아간다. >---- >『정치학』, 김재홍 번역, 해제 中 고전 읽기의 진입장벽이 느껴지는가? '''누구나 읽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출판계에서는 아예 '호킹 지수'(Hawking Index)라는 표현까지 있다. 책 전체 페이지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 독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비율을 계산한 것이다. [[스티븐 호킹]]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호킹의 저서 역시 이렇게 인지도는 높지만 난이도 역시 높은 책들이 대부분이어서 붙은 표현이다. 그러니 고전이 전하는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고전 '강의'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며, 해설서가 나오는 건 예사이다. 고전과 비슷한 종교의 [[경전]]도 이걸 교리대로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성직자가 존재하는 것도, 일반인들은 그냥 읽어서는 교리를 깨닫기가 매우 힘들거나 오독을 하기 때문이다. 이건 책에만 제한되는 평가가 아니다. 고전 혹은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들은 원래 입문 난이도가 만만하지 않다. 그나마 고전 영화는 좀 입문이 쉬운 편이다. 흔히 현대의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시민 케인]]이나 [[대부(영화)]] 등. 이러한 저작물들은 시간도 오래 지나지 않았을 뿐더러 현재 기준으로도 밀리지 않는 연출력과 이야기 전개 등을 보여주기 때문에 고전에서 발생하는 '시간의 흐름에 의한 차이'와 관련된 문제점들이 적거나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외에는 난이도가 대개 다들 높은 편이다. 책은 물론이고, 고전 음악도 진입장벽이 높은 편. 오페라도 현재 뮤지컬보다 훨씬 진입장벽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전 게임의 경우, 구동부터가 문제가 된다.[* 주로 호환성이 문제가 된다. 호환성을 해결했다면, 사양 문제는 의미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다행인 점.] 설령 구동한다 해도, 시대가 너무 벌어진 경우 별로 재밌다고 느끼지 못하기 십상이고, 난이도도 무시무시한 경우가 많다. 인문계열 책의 경우, 그 내용을 생각 없이 읽어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라 왜 굳이 이렇게 써야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장황한 문장들이나 너무 황당무계하고 말이 안 되는 문장들이 넘쳐난다. 다만 이것은 '''옛날 그 책이 쓰일 당시와 현재 읽는 시점 사이에 오랜 시간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장황한 문장의 경우 예컨대 근대 정치학 고전들을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읽어보면 어째서 이러한 복잡하고 많은 표현을 사용해서 간단한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지 느낄 때가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글이 쓰일 당시에는 애초에 그 저자가 말하는 개념 자체가 없거나 부정확'''했다.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히 여기는 개념들은 옛 사상가들의 그렇게나 장황하고 어려운 토론의 결과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황당무계한 사상의 경우 극단적인 예로 과거에 쓰인 상당수의 윤리학 고전들은 [[노예]]제의 효율성에 대해 입증하려 한다. 이 역시 그 시대의 상식은 노예제가 합리적이라고 믿었기에 그렇게 쓰인 것이고, '''우리들 역시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조차, 먼 훗날 사람들은 어이없어 하는 게 많을지 모른다. 즉,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야 한다. 고전이 읽기 불편하고 어려운 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고전의 특성상 많은 사전조사와 노력을 요구하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고전이 쓰일 당시와 현재 독자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회,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는 실제로 그 저자가 글을 못 쓴 것이 맞기도 하지만. 어떤 내용은 원래 대중을 염두에 두고 형식에 맞춰서 쓴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전해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 다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강의 노트 내지는 청강생들이 받아 적은 강의 노트이거나 거듭해서 개작이 이루어진 초고 형태의 원고 내지는 지속적인 탐구를 위한 기록물이다. 이런게 술술 읽히면 그게 특이한거다. 다만 고전 소설은 진득하게 읽다 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때가 있다. 소설은 특정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반복되는 서사적 구조가 있어 몰입력이 있고, 위에서 언급했듯 고전이라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상당히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도 그 의미와 감동을 찾을 수 있기 때문. 이 때문에 고전 철학, 사상에 대한 책에 비하여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을 확률이 훨씬 높다.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보다 더 재미있게 읽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또한 이들은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장르의 법칙 혹은 [[클리셰]]를 완성한거라 생각보다 익숙하고, [[돈키호테]], [[몽테크리스토 백작]]처럼 그냥 너무 재밌어서 고전이 된 사례도 있으니 너무 재미없을 것이라고 단정짓기보다는 직접 경험해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후대의 작품을 먼저 접하고 나중에 고전을 읽는 경우 '이거 흔하고 진부한 내용인데 어째서 명작이라는 거지?'라고 의아해질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고전이 먼저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자. 옛날에 어떤 작품이 나왔는데 인기를 끌어서 이후 비슷한 내용이 많아지면서 [[클리셰]]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고전이 당신이 아는 그 클리셰의 시초라고 보면 된다. 앞서 언급한 몽테크리스토 백작도, 복수극의 플롯 구조를 완성했다는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 역시 가진다. 즉 이후의 복수극의 클리셰들은 거의 대부분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등장한 요소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소장하고 싶은 고전이라면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단순히 읽어보기 위해서 찾는 것이라면 근처 도서관을 방문하여 바로 열람하는 것이 훨씬 낫다. 가격을 고려할 때, 고전 문학은 대형 출판사 여러 곳에서 '세계 문학 전집' 등으로 출판되는 경우가 많아서, 대개 철학이나 사상 책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편이다. 단,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해외 고전 서사시 등의 작품은 학술 상의 목적으로 출판되는 경우도 많아 가격이 만만치 않은 점에 대해 주의가 필요하다. [[분류:한자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