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조(북위) (문단 편집) === 종친들과 대립하다 === 첫 번째 상대는 '''북해왕 원상'''이었다. 당시 대장군 녹상서사의 위치에 있었던 원상은 교만하고 사치스러우며 불법으로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아 큰 집을 지었기 때문에 원성이 높았다. 원상은 관군장군 여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여호는 고조의 사촌여동생 고씨의 남편으로 고조와 사돈관계였다. 고조는 애초에 선무제가 자신을 보필하게 할 목적으로 발탁했던 인물이었지만 고구려 출신이라 북위 조정에 연고가 적었다. 때문에 여호와 사돈관계를 맺는 것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세력을 부풀려가 어느덧 조정의 주요 인사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고조는 궁극적으로는 여호 역시 제거하려 했기에 선무제에게 여호와 북해왕 원상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참소했다. 안 그래도 원상의 전횡에 실망했던 선무제는 최량으로 하여금 원상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게 하고, 고조로 하여금 원상을 체포케했다. 원상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그를 빼돌리려던 노복 몇명이 처형되자 원상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좌절하여 울다가 얼마 못가 세상을 떠났다. 원상이 몰락하자 고조의 세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원상이 죽고 얼마 후, 고조는 선무제에게 우림과 호분을 인솔하여 여러 친왕들의 저택을 지키자고 상소했는데, 이것은 북위 종친들을 감시하며 유폐시키자는 의도였다. 그 소식을 들은 팽성왕 원협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508년 우열의 조카인 황후 우씨가 세상을 떠나자 선무제는 고조의 조카인 귀빈 고씨를 새 황후로 삼으니 그녀가 선무황후 고씨였다. 선무제는 고조를 더욱 신임했고 고조의 위세는 점점 더 높아졌다. 선무제의 신임과 상서령(尙書令)이라는 요직, 그를 따르는 막강한 세력을 갖춘 고조는 북위의 최강 실세가 되어 조정의 개혁을 단행했다. 바로 종친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일이었다. 봉록과 녹질을 감소시키고 훈인들을 내쫓는 개혁이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개혁 조치들은 황족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탁지상서 원광은 고조를 진나라 시대의 환관 [[조고]]에 비유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원광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좌천되었다. 보다못한 팽성왕 원협이 고조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이마저도 무시되었다. 고조는 역으로 원협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선무제는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협의 인망이 높았던 때문도 있었겠지만 선무제가 나름대로 종친과 외척 간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