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졸 (문단 편집) ==== [[NBA]] 고졸 선수들 ==== NBA의 경우 한 차례 커다란 산통을 겪고 나서 현재 고등학교 졸업 이후 최소 1년 이상 지나고, 만 19세 이상만 드래프트 신청이 가능하게 되어 고졸선수들의 직행이 금지된 상태이다. 대학에 가기 싫은 선수는 최소 1년동안 다른 리그에서 뛰어야 하는데 이를 택한 선수는 브랜든 제닝스 등 극소수. NBA에서 고졸이 허용된 것은 1970년대, 당시 드래프트 참석을 위해선 대학졸업이 강제되었던 시기에 스펜서 헤이우드가 생활고를 이유로 NBA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였다. 헤이우드는 결국 NBA가 아닌 ABA에서 뛰게 되지만, 그가 프로에 데뷔한 이후 이 소송에서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의 후배들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NBA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대졸이 필수가 아니게 됐다고 해도 여전히 대세는 대졸이었다. 실제로 1980년부터 1990년까지 전체 1순위를 보면 11명 중 8명이 대졸, 나머지 3명은 3학년이었다. 1979년 [[매직 존슨]]이나 1993년 [[크리스 웨버]] 같은 2학년 출신조차 희귀한 판이었고, 초특급 유망주였던 [[샤킬 오닐]]조차 3년을 다니고 NBA에 진출했다. NBA에서 사상 최초의 드래프트된 고졸선수는 1960년대에 뽑힌 레지 하딩이었으나, 당시 규정상 그의 지명은 취소되었고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1년 뛰고 나서야 프로에 데뷔할 수 있었다. 또한 역대 최고의 센터 중 하나인 고졸 [[모제스 말론]]은 ABA에 드래프트되었다. 사상 최초로 NBA 팀에 뽑혀 실제로 뛴 고졸 선수는 1975년 1라운드에 뽑힌 데릴 도킨스, 그리고 같은 해 2라운드에 뽑힌 빌 월러비였다. 문제는 두 선수가 별다른 족적을 내지 못했다는 것. 그리 대형 유망주가 아니었던 월러비는 그렇다고 쳐도 도킨스는 어마어마한 운동능력과 사이즈, 강화된 림으로 바꾸도록 규정을 바꾸게 만들 정도의 파워를 지닌 유망주라 고졸임에도 5번으로 뽑혔다. 그러나 그는 선수경력 내내 부족한 기본기로 파울트러블에 시달리며 올스타에도 한번 못 뽑히는 좋은 롤플레이어 정도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무려 20년간 고졸 선수는 등장하지 않았다. NCAA 무대를 못 밟아보고 전문대에 진학했다 데뷔한 [[숀 켐프]]도 있지만, 그는 엄연히 대학선수였기에 고졸로 치지 않는다. 그러나 딱 20년이 지난 1995년, 대학 진학을 위한 최소한의 SAT 성적이 간당간당하게 안 나오던 특급 유망주 [[케빈 가넷]]이 과감하게 NBA드래프트 신청서를 낸다. 그리고 우연히도 도킨스와 같은 5순위로 뽑힌다. 가넷의 데뷔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보냈다. 당시 그는 큰 키와 긴 팔, 어마어마한 운동능력에 슛/드리블/패스/리바운드/수비 등 모든 걸 다 하는 선수였지만 그래봤자 아마추어 무대에서 뛰었을 뿐이었다. 미국 고등학교 농구는 동아리급 팀들과 수준 높은 준대학급 팀이 섞여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NBA급 유망주들은 아마추어 무대에서 비상식적 기록을 내서 이 기록은 전혀 변별력이 없었다. 그가 뽑히게 된 것은 그가 NBA팀들과의 워크아웃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넷은 센터의 신장을 지녔지만 몸무게는 스몰포워드에 가까웠으며, 플레이스타일은 심히 애매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가 높은 순위에 뽑혔음에도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가넷은 루키 시즌 후반부부터 주전으로 올라오며, 탄탄한 수비기본기를 바탕으로 좋은 선수로 성장한다. 몸무게 문제는 의외로 강한 그의 하체 덕분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두 포워드 포지션 사이에 있는 선수란 단점은 "파워포워드와 스몰포워드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으로 발전했고, 결국 그는 2년차에 벌써 올스타에 선발되며 매직 존슨 이후 최연소 올스타가 된다. 가넷의 성공은 NBA에서 '''광풍을 불러일으킨다.''' 고졸이라도 재능만 있으면 살아남고, 스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본 선수들은 신청서를 내는데, 그리고 팀들은 뽑는데 점점 더 과감해지기 시작했고, 1996년에 [[코비 브라이언트]]와 저메인 오닐, 1997년에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뽑히는가 하면 다음 해에 알 해링턴과 라샤드 루이스, 롤린 영, 1999년엔 가넷의 재림이라 불리는, 7피트임에도 자유투라인덩크를 하는 괴물 조나단 벤더와 리온 스미스가 뽑히고, 2000년에는 마찬가지로 제2의 가넷이라 불리던 대리우스 마일스와 드숀 스티븐슨이 뽑힌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고순위가 마일스의 3순위였다. 그러나 이렇다할 대학 유망주가 없다고 평가받던 2001년에 팀들이 단체로 미쳤는지 '''1순위''' [[콰미 브라운]], 2순위 [[타이슨 챈들러]], 4순위 에디 커리까지 톱4 중 3명이 고졸로 채워지고 만다. 이후 2002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2003년 '''[[르브론 제임스]]''', 2004년 [[드와이트 하워드]]까지 '''4년 연속으로 전체 1순위가 고졸이 되며''' 고졸광풍은 절정에 이른다. 게다가 90년대만 해도 한두명씩 뽑히던 고졸이 2003년엔 5명, 2004년엔 8명, 2005년엔 무려 9명이나 뽑힌다.[* 위에 언급된 고졸금지 룰이 이후에 도입되어 2006년부터 고졸직행은 대부분 없어졌지만, 일부 선수들은 이를 우회해서 고등학교 졸업 직후 NBA에 왔다. 대표적으로 수단/호주 이중국적자이며 캐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쏜 메이커인데, 2016년 당시 아직 고등학생의 신분이었음에도 자신이 사실 2015년에 졸업했지만 스스로 1년 더 남겠다고 한 것을 증명함으로서 규정을 교묘하게 깨지 않음으로서 고졸직행 선수가 되었다. 그보다 1년 전에 인도 선수 사트남 싱 바마라 역시 고등학교를 5년 다님으로서 개정 이후 뽑힌 첫 고졸직행 선수가 됐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뽑힌 선수들이 다 잘했으면 몰라도, '''상당수가 망했다는 점이다.''' 가넷, 코비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오닐은 첫 몇년을 기회를 못 잡아 전혀 성장하지 못했고, 맥그레이디는 초반에 멘탈문제가 보이는 듯하며 지지부진했다. 조나단 벤더는 20년 가까이 된 마이클 조던의 맥도널드 게임 최다득점 기록을 깰 정도로 특급 유망주로, 큰 키에 엄청난 운동능력, 다재다능함으로 가넷에 비유되던 선수였지만, 가넷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던 우려가 현실화되어 어정쩡한 스타일 때문에 망했다.[* 초창기 가넷은 어정쩡했지만 수비와 박스아웃 등 기본기가 고등학생치고 엄청나게 좋았다. 거기에 본인의 엄청난 승부근성과 노력, 배우려는 의지까지 더해 짧은 시간 내에 NBA급 빅맨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자기 주 포지션(파워포워드)에서 밥값을 할 수 있게 되니 다재다능함은 플러스 요소가 된 것. 그러나 벤더는 빅맨으로서 능력이 택도 없이 적었다.] 2001년의 1라운드 10순위 이내에 뽑힌 4인방 중 현재 성공한 이는 챈들러 뿐인데, 사실 챈들러도 데뷔 이후 3년간 지지부진해서 망한 픽 취급받다가 2004-05시즌에 수비형 빅맨으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케이스다. 그 외에 로버트 스위프트, 세바스천 텔페어 같이 재능을 못 살린 케이스부터, [[조쉬 스미스]]나 제럴드 그린같이 준수한 롤플레이어급은 됐으나 재능에 비해 아쉬운 성장을 보인 선수들까지 있었다. 확실한 건 뽑힌 수에 비해 그 기대치에 걸맞게 성장한 케이스는 비교적 소수였다는 것. 게다가 성공한 고졸들도 성장기간이 필요했다. 가넷이나 코비는 2년차부터 올스타가 되었지만 1년차 때는 거의 배우는 기간이었다. 맥그레이디 역시 마찬가지고, 이 기간을 못 얻은 저메인 오닐은 아예 몇년동안 성장이 제자리걸음이라 실패한 선수 취급받았었다. 챈들러는 위에 언급됐다시피 성장이 느렸다. 아마레나 르브론, 드와잇 하워드처럼 루키시즌부터 즉시전력감인 케이스가 드물었던 것. 즉,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선수를 뽑았던 이전과 달리 NBA팀들은 미완의 대기를 가능성만 보고 뽑아서 성장시켜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잠재력 덩어리"들을 안 뽑을 수도 없었다. 고졸 열풍이 절정일 때 많은 특급 유망주들이 바로 드래프트 신청서를 냈고, 우물쭈물하다가 제2의 코비, 가넷을 놓칠 순 없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JR 스미스]]니 [[숀 리빙스턴]]같은 선수를 뽑아야 했던 것이다. 고졸 직행 금지에는 위와 같은 팀들의 불만이 개정의 결정적 이유였다.[* NBA사무국은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작은 리그이며, 총재는 구단주들의 투표로 뽑힌다. 또한 사무국 운영비와 별개로 리그 운영비의 대부분은 팀운영비로 충당된다. 노사 관계로 따지면 사측은 사무국이 아닌 구단주 모임이며, 실제로 이 때문에 두 차례 직장폐쇄 당시 구단주들과 노조가 협상 타결에 실패하자 구단주들이 직장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즉, NBA에서 구단주들은 갑이다. 르브론같은 슈퍼스타들에 메달려서 그렇게 보이진 않을 뿐.] 그러나 이와 별개로 잠재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경쟁이 심하고 실력이 없으면 냉정히 내쳐지는 NBA에서 생존경쟁을 하면서 도태된다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NBA드래프트 신청을 했다가 낙방하면 고졸선수들은 좋은 대학에 갈 길이 거의 막혀버린다. 원칙적으로 에이전트를 고용하지만 않으면 NBA드래프트 신청을 해도 지명되지 않는다면 아마추어 자격을 유지할 수 있고, 대학에서 뛸 수 있다. 그런데 NBA 드래프트가 열리는 6월말 경은 대부분의 대학들이 신입생 선수들 리크루팅을 마무리한 시기이다. 특급 고등학교 선수들은 이르면 3학년이나 심지어 그 이전부터 대학들이 접촉하기 시작하며, 특히 4학년 때는 수백통의 입학허가 편지를 받는다. 입학은 당연히 가을에 하지만 어느 학교에 입학하겠다는 선언(commit)은 학기가 끝나는 6월 이전에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때까지 갈 대학을 정하지 않으면, 농구장학생 TO가 제한되어 있는 대학들은 다른 선수들로 로스터를 준비하고, 낙방된 이후에 다시 대학에 가려고 해도 이미 명문대들은 리크루팅을 마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매년 드래프트 낙방자들이 대학무대로 돌아가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대학 재학생들이다. 이 상황에서 뽑히지 않은 많은 선수들은 운 좋게 대학에 갈 수도 있지만 해외나 마이너 리그에 가야 하는 경우가 많고, 성장해야 할 어린 시기에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날개가 꺾여버리는 경우도 많다. 운 좋게 뽑혔다고 해도 NBA에서 벤치나 달구고 있다가 성장을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고졸은 아니지만, 만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한 [[다르코 밀리시치]]가 이 경우.] 이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위에 언급된 고졸 제럴드 그린은 "영리한 결정"이라며 "모두가 르브론 제임스는 아니다. 그는 준비된 상태로 들어와서 바로 리그를 압도했지만, 많은 이들은 (들어와서) 서장해야 한다. 나 역시 성장해야 했다. 하지만 나이 제한, 대학경험 1년이 있으면 성장을 할 수가 있고, 그건 좋은 것 같다"라고 환영의 뜻을 보였지만, [[앤드류 바이넘]]같은 선수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다른 사업장에서는 사업주나 회사의 사장이 그런 식의 룰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가 없다"며 반대의 입장을 보이면서, 룰에 대한 평은 엇갈리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실제로 고졸선수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하나로 잘라서 말할 수가 없는 상황.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