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환(남북조시대) (문단 편집) == 개요 == [[북위]](北魏) 말기의 권신이자 [[북제]]의 시조. 고환(高歡)의 [[자(이름)|자]]는 하륙혼(賀六渾)으로 원래 [[북위]] 발해군(渤海郡) 수현(蓨縣) 사람이었지만 본인은 북위 6진 중의 하나인 회삭진(懷朔鎭)에서 태어났다. 고환의 증조부 고호(高湖)가 [[모용부|모용선비]] 정권인 [[후연]]의 지방관이었다가 북위의 화북 정벌기인 4세기 말에 항복하여 북위에서 벼슬했고, 조부 고밀(高謐) 또한 북위 조정에서 아버지처럼 관료로 지냈지만 죄를 얻어 북쪽 변방인 회삭진으로 가족이 이주하게 되었다. 출신 계통은 [[한족]](漢族)이었지만 할아버지 이후 3대째 회삭진에서 살았기에, 고환 자신은 [[선비족]]의 풍습에 익숙했다. 고환의 아버지는 [[고수생]](高樹生)[* 《북제서》에는 고환의 아버지가 고수(高樹)라고 기록되었지만 묘지(墓誌)에는 고수생이라고 되어 있는 자료가 나왔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훗날 손자 고양이 '''문목제'''(文穆帝)로 추존했다.]이었고, 어머니는 [[한기희]][* 훗날 손자 고양이 '''문목황후'''(文穆皇后)로 추존했다.]였으며 그들의 [[장남]]이었다. 고환은 일반적으로는 [[한족]]이라는 게 통설이지만, [[고구려]]계 인물이라는 가설도 있다. 모용선비의 [[전연]]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잡아와서 수도 주변에 사민한 고구려 사람들은 최소한 5만(부여는 4만)으로 집계될 정도로 많았고, 후연 또한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주력군이 신라땅에서 가야-왜-백제군을 완파하는 동안 뒤통수친 결과긴 해도 요동 일대 고구려 땅을 침탈하면서[* 사실 아신왕이 이끄는 백제-왜-가야 3국 연합군이 고구려에게 거둔 유일한 승리 또한, 빡친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군이 이번에는 후연을 박살내는 동안 주력군이 없는 경기-황해 일대를 뒤통수친 결과였다.] 꽤 많은 포로를 잡아왔었다. 때문에 전연부터 [[북연]]에 걸친 당시 [[연나라]]의 고씨들 중 상당수는 고구려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북위의 외척으로 권세를 잡은 [[고조(북위)|고조]]처럼 [[고구려|고려]]인이라는 기록은 없으니, 현재로선 추정의 영역이다.[* 《발해 국호 연구》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