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곤도르 (문단 편집) ==== 곤도르와 로한의 우정 ==== 2489년에 보로미르가 나즈굴과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하자 뒤를 이어 [[키리온(가운데땅)|키리온]]이 통치 섭정으로 즉위했다. 그의 재위 시기에 곤도르는 크나큰 위기에 처한다. 2501년에 전차몰이족의 일족인 발코스 부족이 동부에서 몰려와 북부인들을 학살하고 이들을 내몬 다음 [[로바니온]]을 차지한 것이다. 또한 [[돌 굴두르]]의 지원을 받아 창포벌판의 남부 안두인 계곡까지 모두 황폐화 시키면서 곤도르를 궁지로 몰아넣는 데에 성공하였다. 2510년에 로바니온을 점거한 발코스 부족이 곤도르로 남하할 움직임을 보이고 [[안개산맥]]의 오르크들도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통치 섭정 키리온은 과거에는 혈맹이었지만 지금은 저 멀리 북쪽으로 이동한 에오세오드족에게 구원을 요청하기로 한다. 에오세오드족에게 구원을 청하는 것은 [[돌 굴두르]]의 어둠지역을 통과해야하는 어려운 임무였기에, 키리온은 여섯 명의 자원자를 모집하여 하루에 2명씩 짝을 지어 밀사를 파견했다. 총 6명의 밀사들이 에오세오드족을 향해 구원을 청하러 떠났으나, 오직 한 명만이 포위망을 뚫는데 성공하였다.[* 사신의 이름은 보론디르로, 에오세오드와 같은 북방인 혈통을 이어받아 승마에 능숙했다. 그는 켈레브란트 벌판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3월 25일에 사신은 에오세오드 부족의 거주지에 도착하여 에오세오드의 지도자인 [[에오를]]에게 전갈을 전했고, 에오를 또한 곤도르가 무너지면 에오세오드족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 곤도르를 돕기로 결정한다. 4월 6일, 에오세오드는 대략 7천명 정도의 모든 기병대를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돌 굴두르]]에 도달했을 무렵, 돌 굴두르의 사악함에 두려움을 느끼고 망설였지만 [[갈라드리엘]]이 새하얀 안개로 어두움을 밀어내며 그들을 도와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한편 곤도르에서 원군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키리온은 에오세오드 부족의 군대가 와줄지 회의를 느끼며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로한 고원을 지날 무렵 이미 안두인 강을 건넌 발코스족이 후방에서 대거 출현하여 퇴로를 끊어버렸고 북쪽의 맑은림강을 넘어 곤도르 군대를 켈레브란트 벌판까지 밀어붙였다. 게다가 북쪽에서는 안개산맥의 오크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곤도르군을 사이에 밀어넣으며 앞뒤가 모두 막힌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키리온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바로 그 순간, 발코스 군대의 후방에서 에오를의 기병대가 기습공격을 펼쳤고 발코스는 크게 패해 달아났다. 에오를은 이들을 마저 추격하여 [[칼레나르돈]] 평원에서 발코스족 군대를 대파하고 곤도르 병사들과 키리온을 구해내는 데에 성공한다. 모든 이들은 키리온이 에오를을 데리고 가 대연회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에오를에게 석달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빠르게 [[미나스 티리스]]로 돌아간다. 석달 후, 키리온은 에오를과 함께 성산[* 로한어로 할리피리엔. [[엘렌딜]]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로한의 건국 이후에 유해는 미나스 티리스에 이장하고 봉화대로 쓰이게 된다.]에 올라 이미 숱한 전쟁으로 인하여 인구가 많이 줄어있었던 [[칼레나르돈]]의 소유권을 에오를에게 양도한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에오를은 칼레나르돈에서 살 것이며 곤도르와의 우정은 영원하고 곤도르의 적은 곧 그들의 적이라고 [[에오를의 맹세]]를 선포하며 화답한다. 키리온과 에오를은 함께 퀘냐로 이 맹세는 [[누메노르]]의 영광과 [[엘렌딜]]의 신념이 함께 할 것이고 [[발라(가운데땅)|발라]]와 [[일루바타르]]가 보살필 것이라고 맹세했고,[* 그리고 [[반지전쟁]] 시기에 [[사루만]]에게 유린당한 [[로한(가운데땅)|로한]]은 [[발라(가운데땅)|발라]] [[만웨]]의 사자이자 [[일루바타르]]가 부활시킨 [[간달프]]에 의해 다시 부활하게 된다.] 이렇게 곤도르와 로한의 동맹은 시작된다. 이후 곤도르의 통치 섭정직은 [[할라스]]-[[후린 2세]]-[[벨렉소르 1세]]-[[오로드레스(곤도르)|오로드레스]]-[[엑셀리온 1세]]로 이어졌다. 엑셀리온 1세는 미나스 티리스에 백색탑을 재건하였고, 이 이래로 이 탑을 '엑셀리온의 백색탑'이라고 불렀다. 그에겐 후사가 없었으므로 벨렉소르 1세의 딸인 모르웬의 손자 [[에갈모스(곤도르)|에갈모스]]가 그 뒤를 이어 통치 섭정이 되었다. 에갈모스 다음 섭정으로 즉위한 [[베렌(곤도르)|베렌]] 시절에 곤도르와 로한은 동시에 크나큰 시련을 맞았다. 2758년에 [[움바르]]와 하라드인들로 구성된 해적들이 곤도르 해안에 상륙해 산맥을 넘어 [[로한(가운데땅)|로한]]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이에 던랜드인들과 동부인들까지 움바르, 하라드인들과 합세하여 공격하니 수적 열세에 몰린 [[로한(가운데땅)|로한]]은 대패하고 수도 [[에도라스]]를 빼앗긴 채로 남쪽요새[* 이 전투에서 로한의 왕 [[헬름(가운데땅)|헬름]]은 홀로 괴력을 발휘해 싸우다가 동사한다. 그 이후 남쪽요새와 요새가 위치한 협곡은 헬름과 그가 분 나팔의 이름을 따 나팔산성과 [[헬름협곡]]이라 불리게 된다.]으로 후퇴하여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곤도르 내부로 들어온 해적들을 먼저 물리친 곤도르 측에서 섭정 베렌의 아들 [[베레곤드(섭정)|베레곤드]]를 로한에 파견하여 해적을 격파한 다음, [[백색산맥]] 동서로 원군을 보내 로한에 있던 던랜드인들과 동부인들을 큰 패배를 안겨주어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보로미르 이래 곤도르에서 가장 위대한 장수였던 베레곤드가 2763년, 섭정직을 물려받은 뒤 곤도르는 예전의 위세를 서서히 찾아가는 듯 했다.[* 한편 베렌은 2759년, 사루만에게 [[오르상크]]와 [[아이센가드]]의 원형구역을 내주었고 그로 인해 로한은 전쟁의 상처를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베렌의 아들인 [[벨렉소르 2세]]가 죽자 [[미나스 티리스]]의 백색 나무도 시들어 죽고 말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새로운 묘목을 구할 수 없었고 나무는 국왕이 귀환할 때까지 죽은 채로 방치되었다. 벨렉소르 2세 후임 섭정인 [[투린 2세]] 때에 사우론의 세력이 다시 준동하기 시작했다. 모르도르의 오르크들이 곤도르 내부에 침범해왔고 [[이실리엔]]의 주민들은 모두 모르도르의 군대를 피하여 [[안두인 대하]] 너머의 서쪽으로 이주했다. 투린은 이실리엔에 '일몰의 창' [[헨네스 안눈]]을 비롯한 많은 비밀 은거지들을 만들었고 아노리엔 방비를 목적으로 카이르 안드로스 섬을 요새화 했다. 2885년에는 남쪽의 [[하라드인]]들이 남곤도르를 점령하고선 포로스 강을 건너 이실리엔을 공격해왔다. 이에 로한의 국왕 [[폴크위네]]는 쌍둥이 왕자 폴크레드와 파스트레드를 보내 곤도르를 지원했다. 곤도르, 로한 연합군은 포로스 강의 여울목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두 쌍둥이 왕자는 전사하고 말았다. 로히림은 두 왕자를 한 무덤에 함께 묻었는데 이 무덤 '하우드 인 과누르'는 오랫동안 그 강변 위에서 곤도르를 지켜왔다. [[투린 2세]]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상당량의 황금을 폴크위네에게 보내 위로했다. 투린의 아들 [[투르곤(곤도르)|투르곤]]의 시대에 '운명의 산' [[오로드루인]]이 다시 화염을 내뿜었고 사우론은 모르도르로 재입성하여 자신의 존재를 공공연히 알렸다. 투르곤이 죽자 사루만은 명목상으로는 아직 곤도르의 소유였던 [[아이센가드]]를 자신의 소유로 하고선 점차 요새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