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곤룡포 (문단 편집) == 관련 이야기 == [[세종(조선)|세종]]조에 세종이 [[신숙주]]에게 이 곤룡포를 '''[[이불]]'''로 덮어준 일화가 유명하다. 알다시피 세종이 갸륵히 여겨 덮어준 것이긴 하지만 신숙주에겐 정신적 벌칙인 셈.[* 상사가 자고 있는 부하에게 겉옷을 주고 갔다는 것도 충격인데 이것은 군주정 시대에 군주가 신하에게 군주의 의복을 주고 간 거니 얼마나 무서울까... 군필자들은 별 4개 군사령관이 당직실에 왔다가 너무 피곤해 자고 있던 소령인 당직사령에게 자신의 야전상의를 덮어주고 갔고, 소령이 일어나 견장과 명찰을 보았다 생각해보자.(...)][* 근데 이런식의 이야기는 다른 나라에도 있는 설화인 것같다. [[옹정제]]도 이와 같은 일화가 있다.] [[인조]]가 백성에게 곤룡포를 하사했다는 민담이 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던 인조는 추위와 피로로 인해 제대로 거동을 할수 없었다. 그러자 인근에 살던 나무꾼인 서흔남이란 백성이 직접 인조를 업고 피신하였다. 이에 인조는 보답으로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자, 서흔남은 인조가 입고 있는 곤룡포를 입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인조는 곤룡포를 하사했고, 서흔남은 죽을 때까지 인조에게 받은 곤룡포를 소중하게 여기며 무덤에 같이 묻었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서흔남의 무덤 앞을 지날때마다 잠깐 멈추고 절을 해야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야사이고, 실제로는 서흔남의 공적은 영화 [[남한산성(영화)|남한산성]]의 등장인물 서날쇠의 실제 모델로 포위된 남한산성을 몰래 빠져나가 근왕군의 정보를 알아오는 정탐꾼 일을 한 것이 공적이다. [[포청천]] 시리즈 가운데 '이묘환태자'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송인종]]은 자신이 생모를 돌보지 못한 불효를 저질렀으니 그 죄를 어떻게 벌줘야 하는지 묻고 공손선생이 이에 곤장 수십대에 해당한다고 대답한다. 이에 황제가 스스로 곤장을 맞으려 하자, 공손선생은 곧바로 '황상의 곤룡포는 곧 황상의 옥체와 같으시니 용포의 장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라는 굉장한 꼼수를 말하고 송인종 대신 그의 용포가 곤장을 맞게 된다. 이묘환태자는 이 때문에 '타용포'라는 제목을 가지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