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골프 (문단 편집) === 한국 남자 골프 === 국내의 프로골프 역사의 시작은 연덕춘(1916 ~ 2004) 부터이다. 대한민국 제1호 프로골프 선수인 연덕춘은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간 후 이듬해인 1935년 2월 일본관동프로골프협회에서 프로골퍼 자격증을 획득했으며 1941년에는 ‘일본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63년에는 연덕춘을 중심으로 친목단체의 성격을 띤 ‘프로골프회’가 결성되었고 이 모임의 회칙은 프로골퍼 자격 부여 규정과 함께 골프선수들이 지켜야할 의무조항을 명시하고 있어 사실상 한국프로골프협회 창립의 출발점이 됐다. ‘프로골프회’는 그 후 협회 창립을 위한 다각젹인 노력을 기울였으며 1963년부터 1968년까지 프로 양성자는 더욱 늘어났다. 한국의 골프선수들이 국제무대로 진출하는 시점에서 행정적인 일을 맡아 처리할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프로골프협회를 결성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당시 서울컨트리클럽이 이러한 업무를 관장하고 있었지만 대외적인 업무까지 처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1966년 5월 30일 ‘대한골프협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한국골프협회’가 창립된 이후 ‘프로골프회’는 프로골프 선수들의 독자적인 기구 설립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1968년 11월 12일에 ‘한국프로골프협회’를 창립하였다.(한국프로골프 40년사, 2008) 국내 최초의 프로골프대회는 1958년 6월에 서울컨트리클럽에서 3명의 프로선수와 14명의 프로지망생이 참가하여 4일간 진행되었던 ‘한국프로골프 선수권대회’(현 ‘[[KPGA]] 선수권대회’)로 본 대회의 우승자는 연덕춘이었다. 하지만 초창기 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1975년까지 1년에 ‘한국프로골프 선수권대회’와 ‘한국오픈’ 단 2개 대회만이 개최되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 프로골프는 연덕춘, 박명출과 한장상 같은 스타 선수들을 배출하였다. 특히 한장상은 1972년 ‘일본오픈’을 제패하면서 1941년 연덕춘 이후 31년 만에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일본오픈’ 우승자 자격으로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스(Masters tournaments)’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1976년 10월 13일에는 민간 기업이 최초로 골프대회에서 스폰서로 참여하였으며 이는 스포츠마케팅으로서 대한민국 프로골프 사에서 최초의 민간기업 후원 사례로 기록된 것에 의미가 있다(한국프로스포츠협회, 2018). 관악골프장에서 열린 ‘오란씨 골프선수권대회’는 최초로 ‘오란씨(OranC)’라는 제품의 이름을 대회의 명칭으로 사용해 국내 최초로 골프를 마케팅과 접목하였다. 대한민국 프로골프는 ‘오란씨 골프선수권대회’가 개최되면서부터 급속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이후 매경오픈, 신한동해오픈, SK텔레콤오픈 등 유수의 기업들이 타이틀스폰서(Title Sponsor)로 참여한 대회가 개최되면서 프로통산 43승을 기록한 최상호를 필두로 박남신, 최광수, 강욱순, 최경주, 양용은 등의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한다. 1968년 [[KPGA]]가 설립된 이래 서양과 비교하여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한 한국프로골프는 2000년대 중반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고 연간 16 ~ 18개의 1부투어 대회를 개최하면서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이와 함께 시니어투어인 ‘챔피언스투어’와 2부투어인 ‘챌린지투어’ 등 각 급 투어가 연간 40여개의 대회를 개최하면서 양적·질적 성장을 이뤘다. 한국 선수의 해외진출도 활발히 이뤄졌다. 2000년 美 PGA투어에서 [[최경주]]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무대에 진출하여 2002년 ‘컴팩 클래식(Compaq Classic)’에서 우승하면서 대한민국 골프를 세계무대에 알리기 시작했고 [[양용은]]은 2009년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PGA Championship)’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더 이상 한국이 세계 골프의 변방이 아님을 입증했다. [[최경주]], [[양용은]] 뿐만 아니라 이후 한국 선수들의 해외진출은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13년,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상금왕에 올랐던 [[배상문]]은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Byron Nelson Championship)’ 우승으로 美 PGA투어에서 첫 승을 신고했고 2014년에는 ‘프라이스닷컴 오픈(Frys.com Open)’에서 우승을 거두며 美 PGA투어 개막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거듭났다. 같은 해 노승열은 美 PGA투어 ‘취리히 클래식(Zurich Classic)’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선수로는 최연소로 미국무대를 제패했다. 2017년에는 김시우가 美 PGA투어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The Players Championship)’에서 최연소로 우승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2015년에 김경태는 일본무대(Japan Golf Tour Organization, JGTO)에서만 5승을 거두며 JGTO 올해의 선수상과 상금왕을 포함해 4관왕을 석권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고 안병훈은 ‘BMW PGA 챔피언십(BMW PGA Championship)’ 우승을 기반으로 유러피언투어(European Tour)에서 한국인 첫 신인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골프의 우수성을 만방에 떨쳤다. 2019년에 신인 [[임성재(골프선수)|임성재]]는 혜성같이 등장해 캐머런 챔프와 매튜 울프, 콜린 모리카와, 애덤 롱 등 미국 선수들을 물리치고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신인상인 아널드 파머 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임성재는 올시즌 우승은 없었으나 루키중 유일하게 페덱스컵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 진출해 수상이 유력했었다. 그리고 2020년 3월 2일 혼다클래식에서 드디어 첫 우승을 한다. 참고로 임성재는 2019년에만 2번의 홀인원, 플레이어스챔피언쉽과 더그린브라이어에서 홀인원을 했었다. 기세를 몰아 2020년 11월 [[PGA]] 최고의 대회로 일컫는 마스터즈 오픈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최고의 성적인 공동 2위를 기록하였다. 현재도 많은 선수들이 최고의 무대인 PGA에 도전을 하고있으며 2021~2022 PGA 투어 기준 미국을 제외하면 총 28개국 84명이 참가중인데 영어권 국가인 캐나다 호주 영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가장많은 7명의 선수가 투어 참가중이다. 그만큼 한국 남자골프의 수준과 위상이 높아졌다는걸 알수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