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산주의 (문단 편집) ==== 마르크스 이론의 철학적 기반 ====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 >[[https://www.marxists.org/korean/marx/theses-feuerbach/index.htm|「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2 Thesen über Feuerbach}}}''」]] 이러한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은 1840년대의 전반기에 형성된 것인데, 여기에서 그에게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F. 헤겔]]의 [[변증법]]적 철학과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인간주의 사상이었다. 그가 말하는 인간적 해방이란 공산주의 [[혁명]]을 통한 모든 인간의 자기소외의 극복과 계급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였다. 그에 의하면 [[사유재산]]이란 인간의 노동이 대상화된 것, 즉 객관적 형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인간의 노동의 산물이 사유재산이 되면서, '''거꾸로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노동자)을 지배하는 현상'''을 그는 인간의 자기소외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요컨대 그에게서 공산주의란 단순한 재산의 공동소유가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한 인간소외의 극복, 인간성(인간의 본질)의 적극적인 회복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볼 때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자극에 의하여 촉발되었지만, 동시에 헤겔과 포이어바흐 철학의 주제였던 소외의 개념을 핵심으로 하여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철학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였다. 그는 1845∼46년 엥겔스와 더불어 『독일 이데올로기, Deutsche Ideologie』를 집필, 여기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 관계와 생산력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임을 규명하고 이데올로기나 정치는 물질적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적 유물론|역사유물론]]을 제시하였다. 이에 의하여 그들은 헤겔에서 파생된 독일의 각종 [[관념론]]과 포이어바흐의 사회의식 없는 유물론적 휴머니즘[* 포이어바흐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잘 드러난다. A4 두어 페이지밖에 안 하는 글이므로 인터넷에서 찾아서 읽어보자. 특히 마지막 11번 테제는 정치적 좌우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명문이다.]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옮아갔다. 물론 이들은 인간과 인간의 의식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을 추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단, 마르크스는 이후의 연구들에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의식하려 노력하면서도, 결국 개인별로 원자화시켜서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 기계론적 패러다임의 한계로 볼 수도 있다.] 이들의 새로운 유물론은 형이상학적/기계적 유물론을 극복한 사회적 유물론[* 후에 레닌에 의해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불려진다.]이었다. 역사유물론의 성립으로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그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역사유물론에 의하면 인간은 생산을 중심으로 서로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한 시대의 생산관계는 그 시대의 생산력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였다. 생산력과 그에 따른 생산관계라는 경제적 요인은 사회의 토대이며, 정치 제도·법률·사상·종교·문화 등은 이 경제적 토대 위에 구축된 상부구조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