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산주의 (문단 편집) === [[레닌주의]] === 레닌은 이 공산주의의 제1단계를 '사회주의'라고 규정하였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하여 수립되는 '사회주의' 정권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정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레닌 이래로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강령으로 하지 않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거부하는 사회주의는 결코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는 전통을 세웠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라는 용어도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 사이에서는 전혀 별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공산주의의 제2단계, 즉 '보다 높은 단계'는 생산력의 높은 발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인이 분업에 노예처럼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며, 따라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이가 없어지고, 노동이 단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제일의 욕구'로 되고,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레닌주의는 이 낭만적인 공산주의의 미래상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계승한 것은 여기까지이며, 레닌주의에는 마르크스가 주장하지 않은, 레닌 등에 의해 덧붙여진 부분도 상당히 많다. 이는 사실상 필연적인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가 몰락할 필연적인 이유'를 기술하고 그 대안으로서 나타날 공산주의를 예언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것인지에 대해서나 공산주의 사회가 어떤 형태를 띨 것이며 어떤 생산방식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실천 방식에 대한 내용은 전부 마르크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레닌 등이 새로 만들어낸 부분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대의 공산주의는 사실상 마르크스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부분이 생산 수단의 '''국유화'''다. 오늘날에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와 [[국유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만,[* 사실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노동자 자주 관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구 공산권도 결국 '국가자본주의'에 불과했다고 보는 사람들) '국유화'를 공산주의의 '필요조건'으로 볼 뿐, '충분조건'으로 보지는 않는다. 즉 공산주의를 위해서는 '국유화 내지 사회화'는 필요하지만, 부실 기업의 임시 국유화와 같이 국유화가 공산주의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레닌주의]]자들은 [[국유화]]와 [[사회화]]라는 단어를 별 구분을 안하며 쓰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결국 생산수단인 하부토대를 노동자가 소유한다면 상부토대인 국가와 전위대는 소멸하기 때문에 국유화든 사회화든 결국 국가는 소멸하고 생산수단은 노동자의 것이 된다.가 되버리기에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문제라면 생산수단을 노동자가 쥐었다고 모든 사회적 문제와 중앙집권적 국가가 소멸되는게 아니라 더 억압적이게 변했다는 점이지만. 혁명을 실행하기 위한 '''정당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 역시 레닌주의에 속한다. 레닌주의적 정당운영방식은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라고 불린다. 대한민국에도 정당을 민주집중제로 운영할 것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레닌주의를 생각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며[* 민주집중제라는 말에는 '레닌주의적 정당체계' 혹은 '레닌주의의 전반적인 내용' 이외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민주집중제]]를 거론한 정치인들이 어떤 측면에서건 레닌주의적 정책을 추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별다른 반향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혁명의 과정 역시 문제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을 뿐 어떤 방식으로 무너트리라는 행동지침은 제시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혁명에서의 행동지침은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역사가 긴 러시아의 혁명가들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것을 레닌이 최종적으로 정리한 것이며, 마르크스 본인이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 마르크스는 어디까지나 혁명에 이론적 기반과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현대의 사회주의자 중에는 심지어 혁명 자체도 공산주의 본래의 내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은 자본주의를 무너트리려고 노력하는 혁명가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며,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꾀하던, 마르크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부른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고 점진적인 개량을 추구하는 것은 적어도 마르크스가 제시한 방향은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다 직관적으로 정리를 한다면 [[마르크스주의]]는 철학+경제+역사 이론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레닌주의]]는 본질적으로 정치이론 + 혁명이론에 더 가깝다. 부패한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여려 계통의 혁명세력이 경합을 벌인 가운데 결국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기반으로 하는 혁명세력이 두 차례의 연속된 혁명의 와중에 10월 혁명을 통해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는데, 이는 마르크스 이론과는 괴리가 있음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혁명이 개시되기 전, 이러한 괴리를 해소하기 위한 두 가지 다른 사상적 접근이 있었던 바,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멘셰비키"'''로 알려진 계통은 정통 마르크스 이론에 따라 일단 혁명을 통해 러시아가 먼저 근대자본주의 국가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에 따라 러시아의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제정 러시아를 전복하기 위한 혁명에서 __결정적인 조력자로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수립해야__ 하며,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그 대의제 속에서 주류 정당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볼셰비키"'''의 생각은 이와 달랐으며, 레닌은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집적된 러시아 민중의 힘을 사용하여 제정을 무너뜨린 후 그 힘을 고스란히 [[서유럽]] 모델의 근대자본주의 국가를 만드는데 헌납하는 것은 일종의 결정적 후퇴, 배신 행위로 생각해 좀 더 급진적인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레닌주의는 마르크스가 이론 상 "자본주의 아래에서 인간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본주의의 득세, 부르주아지 계급의 형성을 건너뛰고 바로 권력의 장악 및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의 건설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형이론으로 분류하는 학자들도 많으며, 실제로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주의의 (소위) "정통" 계보에 속해있는 변형이론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인지, 아니면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고 타락시킨 것인지에 대해 반세기가 넘게 키배가 이루어져왔음에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여하간, 위와 같은 상황에서 레닌은, [[자본주의]]적 토대의 건설과정 자체를 넘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공산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물적 토대의 집적 및 부르주아지의 활동을 허용하되 부르주아지에 의한 권력장악은 막아서고 그 과정 전체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마침 그 상황에서 "레닌주의"라고 불리우게 될 사상에 기여를 한 것이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이었다. 즉,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얘기한 조건의 미비를 극복하기 위하여 혁명을 이룩한 러시아(후일 '소비에트 연방')는 비록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제반 조건이 미비하더라도[* 불행하게도 볼셰비키가 혁명 후 나라 곳간 뚜껑을 따보니 예상보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이는 스탈린의 등장에 큰 영향을 준다.], 세계적이고 영구적으로 지속 될 혁명의 발화지점으로 일종의 선봉의 역할을 하게 되며,''' 이러한 혁명이 서쪽으로 유럽, 동쪽으로 아시아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퍼져 나가면서 세계국가들 사이의 원활한 상호원조 및 협력이 이루어지게 되면 비로서 그러한 원조를 통해 러시아 사회는 무난하게 물적 토대를 쌓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 레닌주의는, 전쟁에서 적지에 상륙작전을 감행하듯, 비록 조건이 미비하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선봉으로 먼저 공산혁명을 이룩하여 본격적인 세계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선봉 및 기폭제로서 역할을 하면 된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며, 사실 그러한 대전제 아래에서 사회적, 물질적 조건이 불충분하더라도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혁명을 일으킨 괴리 및 모순을 '''시한부로'''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적 성격이 강하다. 즉, 실질적으로 1924년 레닌 사후 당장 유럽 전역에 혁명이 터질듯한 흉흉한 분위기가 정리되고, 레닌이 다음 혁명의 전파지로 기대하고 있던 독일 내의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어 버리며,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장악하여 [[스탈린주의]]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