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옥진 (문단 편집) == 생애 == [[전라남도]] 지방 문화재 공대일[* [[공민지]]의 증조부다.]의 4남매 중 둘째로 출생,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창]]을 배우기 시작했다. 10세 전후해서 당대의 무용가 [[최승희]] 휘하에 들어갔는데, 최승희의 밑에서 정식으로 춤을 배운 것이 아니다. 공옥진의 부친이 징용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돈을 마련하고자, 돈 천 원에 딸인 공옥진을 최승희에게 몸종으로 팔아 버렸다고 한다. 여기서 겪은 고초는 이후 1人 창무극 '심청'에서 구구절절이 묻어나온다. 진짜 [[최승희]]가 제대로 부려먹었다고 한다. 공옥진의 인생을 다룬 책 <병신춤을 춥시다>를 읽어보면, 최승희가 좋아하는 [[배(과일)|배]]를 가지고 오다가 전철 승강장에서 가방 끈이 풀려 승강장에 전부 굴러갔는데 주변의 [[일본인]]들은 "조선 아이가 배가 흩어졌다고 운답니다"라고 웃기만 하며 도와주지도 않고, 최승희는 "배가 꼴이 왜이러냐"고 [[힐책]]했다고. 참고로 [[최승희]]는 평소에 제자들에게 자기 발을 씻기게 할 정도로 제자들을 자기 하녀 부리듯이 마구 험하게 부려먹었다고 하는데, 하물며 공옥진은 정식 제자도 아니고 몸종으로 팔려온 신세였으니 그 고초가 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옥진은 [[무용]]을 훔쳐 배웠고[* 문틈으로 최승희가 춤을 추는 모습을 훔쳐 보고 따라 하다 걸리면 매우 심하게 맞았다고 한다.], 최승희는 공옥진이 춤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춤을 조금씩 가르쳐 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조선인에게 공옥진을 돈 2천원을 받고 다시 넘겨 버렸다. 다행히 [[태평양 전쟁]] 와중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귀국 후 여러 극단을 전전하며 공연했다. [[임권택]] 감독의 증언에 따르면 이 시기 판소리의 매력을 알려주려 한 먼 친척 어른과 찾은 기생집에서 공옥진의 공연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절(불교)|절]]에 한번 들어간 적도 있는데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고기 구워먹는 등산객들에게 '병을 앓고 있는데 고기 먹는 게 최고라더군요'라고 하여 고기를 얻어먹고, 고기 냄새가 날까 봐 생쌀을 씹어서 고기 냄새를 감추려 했다고 한다. 이후 계속적으로 1인 창무극과 민속 [[무용]] 연기 모방춤, 곱사춤(병신춤) 등등의 공연으로 다양한 활동을 보였지만, 두 차례의 뇌졸중과 한 차례의 교통사고로 인한 건강 악화와 노환으로 2012년 7월 9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