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학혁명 (문단 편집) === 왜 서구 문명에서만 과학혁명이 일어났는가 === [[파일:kyoboebook_20230606-070952.png]] 전통적 관점에 따르면 왜 서구 문명에서만 과학혁명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민주주의]]적인 개념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과학]]은 이의 제기와 존중 사이의 긴장, 즉 다른 사람들의 관점으로부터의 독립과 그 관점에 대한 관용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을 통해서만 살아 있고 자라게 된다. 다시 말해서,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의 제기의 자유성, 그리고 이런 의문을 받아주는 관용'''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바로, 온화하고 친절한 것이 미덕이고 기존의 질서에 반대하는 것이 개인적인 모욕이 되는 동양의 문명권에서 과학이 강력하게 발전하지 않은 까닭이다.[* 조선의 경우 [[기대승]]과 [[이황]]의 논쟁 등 유학적인 논쟁이 활발하던 시기도 잠깐 있기는 했다.] 한편 현대의 [[과학기술사회학]]을 토대로 하는 사회구성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과학혁명이라는 것이 크게 특별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들은 과학의 진보가 명백한 방향성이 있어 반드시 한쪽 방향으로 진보해야 하며, 그것을 성취한 것이 서유럽 중심의 서구 세계였다는 관점 자체를 부정한다. 대신 이들은 과학혁명 혹은 과학의 진보는 어떤 방향으로든 이뤄질 수 있었으며, 그것이 반드시 지금의 과학과 같은 모습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를 상대주의라 부르며, [[앨런 소칼]]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이 수정된다. "왜 하필이면 서유럽 중심의 과학혁명이 성공하였는가?" 일선 [[과학사학|과학사학자]]들 사이에선 다음과 같은 주장도 제기된다. 기존의 이론 중심적이던 과학이 기술적 실천과 만나 과학혁명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사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과학혁명 이전에는 거의 탁상놀음과 가까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학혁명 이전의 과학은 대개 이론에 얽매여 있거나([[갈레노스]], [[성리학]] 등), 단순한 지식의 수집(천문학)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이후 수많은 분야의 책이 출판되었는데 이를 통해 단순한 실천에만 머물렀던 기술의 영역이 지식으로 진출하는게 가능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냐면, '''이론 중심인 과학자'''와 '''실천 중심의 기술자'''들이 '''책'''을 통해 만나는게 가능해진 것이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교류한 결과, 과학자들은 실험과 증명을 강조하는 경험주의적 학풍이 생겨났고 이러한 이론과 실천의 적절한 융합이 과학혁명을 가능하게 했다는게 과학사학자들의 주장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