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곽채진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경주고등학교 졸업 후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와 함께 [[1992년]] 연고 우선 지명을 받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나, 입단 후 곧바로 방위병으로 복무해 [[1994년]]에 1군에 데뷔했다. 188cm의 큰 체구로 투수 유망주로 손꼽혔으나 기대만큼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또한 불펜에서 몸 풀 때만큼은 공이 워낙 좋았기에 당시 별명이 "불펜 [[선동열]]"이었다. 입단 후 7년차인 [[1998년]]에야 괜찮은 활약을 했으나, 1998 시즌 후 [[마무리 투수]]가 필요했던 팀 사정 때문에 삼성은 [[양준혁]]을 해태에 내주고 대신에 [[임창용]]을 데려왔는데 그 희대의 현금 트레이드에 연루되어 [[양준혁]], [[황두성]]과 함께 해태로 이적했다. 해태 이적 후 당시 암울했던 해태 투수진 상황 덕분에 선발 로테이션에 끼어 꾸준히 선발로 기용되기도 했다.[* 1999 시즌 개막전 선발투수였다. 당시 상대는 [[숭의야구장]]에서 마지막 시즌을 치렀던 [[현대 유니콘스]]였다. 그 게임에서는 2:9로 완패를 당했다.] 1999년도에는 무려 53게임에 나와 109.1 이닝 4.77 평자 8승7패8세이브룰 기록하며 나름대로 구멍난 해태 투수진에서 활약했다. 표현이 그렇다 뿐이지, 본인 입장에서는 트레이드 된게 양준혁 플러스 알파인 것도 좋지 않거니와, 본인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99년에 했던 것 같다. 덕분에 war은 2.81로 본인의 커리어하이였으며, [[컴프매]]에서 해태 99투수들 중 유일한 몬카로 나왔다.[* 알다시피 해태는 이대진 이강철 조계현 선동열 등의 존재로 투수 몬카가 초창기 이후 3개 이하로 나온 적이 거의 없다.] 99년의 양준혁+곽채진의 활약을 합치면 임창용이 아무리 신이었어도 보상금액을 생각하면서 준수하다고 넘어갈 뻔 했다. 하지만 소문난 고무몸인 임창용이 나간 자리를 대체해 줄 선수로 왔으니 어깨가 남아날 리 없었다. 99시즌을 준수하게 뛴 그가 21세기부터는 남아날리가 없었다. 00부터 부상으로 신음했다. 2002 시즌 후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으나, 두산에서 어깨부상 후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