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관군 (문단 편집) == 일본에서의 관군 == [[천황]]이 통치하는 조정(朝政) 휘하에 소속된 군대였으며, 대장군(大將軍)이 지도하는 군대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장군이란 [[막부]](幕府)의 수장인 [[쇼군]]과는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막부의 정이대장군은 무사가 조정의 벼슬을 반협박으로 받아낸 것이고, 원래의 정이대장군은 조정의 무관이 군대 소집시 [[사령관]]으로 임명되는 것이었다. 즉 [[사무라이]]들이 개인적으로 데리고 있는 [[봉건제]] 군대는 관군이 아니었으며, [[사병#s-2|사병]](私兵)이다. 마찬가지로 조정이 직접 군대를 움직이거나 무사단에게 밀지를 내려 관군으로 임명하여 군역을 맡기는 전쟁일 경우는 공전(公戰)으로 인정되어 조정이 벌이는 전쟁이지만, 조정의 지시 없이 사사로이 벌이는 무사단끼리의 가독분쟁이나 전쟁은 사전(私戰)으로 여겨졌다. 관군이 되면 조정을 상징하는 [[깃발]]인 [[니시키노미하타]](錦の御旗)를 수여받는다. 무늬가 들어간 붉은 비단에 황금색 원이 들어간 형태로, [[일장기]](日の丸)의 원조쯤 된다. [[일본]]에서는 무사에 의한 [[군정]]이 수백년간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헤이안 시대]] 이후로는 관군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율령제]] 붕괴 이후로는 조정이 관군을 편성할 능력도 입장도 되지 못했다. 실제로, [[다이묘]]들은 100[[고쿠다카]]당 2.5명의 [[병사]]를 소유할 경제력이 있었으나[* 1만석급의 최하급 [[다이묘]]가 대략 200~300명 정도의 병사를 보유했다.] [[천황]]의 경우 영지가 없으므로 병사들의 녹봉을 줄 수 없었으니 당연히 군대의 편성도 불가능했다. 그 대신 조정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조정에 충성을 맹세한 무사들의 군대가 관군이 되어 다른 무사들과 전쟁을 벌이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는데, [[가마쿠라 막부]] 초기와 말기, [[남북조 시대]]에 천황측 무사들이 관군의 이름을 부여받아 막부측과 전쟁하기도 했다. 하지만 천황의 직할부대가 아니라서 한계가 있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실질권력은 [[막부]]에 있었지만 그래도 관념상 [[천황]]과 조정은 한참 위에 있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고, 관군이 되면 사기가 엄청나게 올라가는 효과가 있었다. 그대신 관군에 대항하는 군대는 통칭 적군(賊軍) 또는 조적(朝賊)으로 불리며, 조적으로 규정된 군대는 사기가 엄청나게 떨어졌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죽은 이후 천황이 [[가마쿠라 막부]]를 공격하는 관군을 일으키자 가마쿠라에서는 사기가 크게 떨어져 술렁거리던 것을 [[호조 마사코]]의 연설로 겨우 다잡을 정도였고, 그러고도 천황이 친히 출정하면 항복할 방침일 정도였다. 그러나 무사정권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관군이라는 이름만으로는 권위를 내세우기 힘들어졌고, 대응하는 측도 천황 주변의 간신들을 친다는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에 약빨이 예전같지도 않았다. [[무로마치 막부]]쯤 되면 아예 천황을 따로 옹립할 정도. [[에도 막부]]쯤 되면 더 심해져서, [[막부]]의 보조금이나 타먹으며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에 관군을 내세울 처지는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이런 입장이 반전된 것은 막부 말기의 혼란속에서 확산된 [[국학(일본)|국학]](國學) 때문. 서양열강의 침탈속에서 외국에 순순히 문호를 개방한 막부를 처단하고 천황을 다시 모시며(尊王)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자(攘夷)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사상이 젋은 무사들을 휩쓸면서 조정이 다시 힘을 얻게 되고, [[금문의 변]]에서는 쵸슈번을, [[무진전쟁]]에서는 막부를 조적으로 규정하는 등 명분제조기의 입장까지 회복한다. 대략 기준은 조정이 소재한 교토를 공격하면 조적(...) 유신웅번인 쵸슈는 강경론에 몸을 맡겼다가 교토를 공격하고 조적이 되어 털렸고, 막부는 사쓰마-쵸슈의 궁정 [[쿠데타]]를 무위로 되돌리고 정치적 우위를 되찾기 위해 토바-후시미 전투를 벌였다가 졸지에 조적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일본인]]들이 흔히 관군하면 떠올리는 건 이 [[무진전쟁]] 당시의 군대들이다. 즉 사쓰마-쵸슈-토사번의 [[유신웅번군]]. 이들 군대를 신정부군(新政府軍)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입지가 좁았어도 [[천황]]과 조정은 하늘 위의 존재처럼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 있었고, 관군으로 인정되자 유신웅번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고 한다. 거기에 비해 [[막부육군]]은 눈앞에 [[니시키노미하타]]가 나타나자마자 [[프랑스 제국 근위대|전의를 상실하고 도주할 정도. ]] [[메이지 유신]] 이후로는 관군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았고 근대화가 되면서 [[국군]][* 일본군이 스스로를 황군 운운하는 건 1930년대 이후의 일이고, 그 이전에는 [[국군]], 일본군으로 호칭했다.] 또는 [[정부군]], [[일본군]]이라는 말을 쓴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이후에는 헌법이 개정되어 군대조직이 일단은 없어졌고 [[천황]] 직속도 아니기 때문에, [[자위대]]를 관군이라고 부르면 다들 이상하게 본다. 자위대는 창설 당시에 치안유지를 하거나 나라를 지키는 경비대 즉, [[보안대(일본)|보안대]]로 불렸기 때문에 실질적인 [[군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관군으로 보진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