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관상(영화) (문단 편집) == 실제 역사와의 차이 == 역사의 전반적인 큰 흐름 외에는 설정 대부분이 픽션이다. 애초에 정통 사극이 아니기 때문에, [[창작물의 반영 오류|재현 오류]]를 지적하기보다는 실제 역사와 비교하는 식으로 봐야 한다. 관복에서 평상복에 이르기까지 [[소품|복식 재현]]이 상당히 엉터리다. 견종 재현도 틀린데, 수양대군의 첫 등장 장면에 나오는 사냥개들이 [[저먼 셰퍼드]]이다. 세이블 색과 검은색의 2마리가 출연했다. 비슷한 모색의 [[진돗개]] 재구와 흑구가 출연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귀나 얼굴 등의 체형을 보면 진돗개와는 거리가 멀다. 저먼 셰퍼드는 20세기에 개발한 품종으로, 영화의 배경보다 500년 가량 늦다. 엄밀히 말하면 [[창작물의 반영 오류|시대적 오류]]이지만, 대중들이 흔히 상상하는 사냥개의 이미지가 저먼 셰퍼드이고, 수양대군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허용이자 의도적 장치라고 보는 것이 옳다. 반면 잘 현실을 반영한 부분은 비 올 때 쓰던 갈모의 재현으로, 종이에 기름을 먹여 방수가 되는 모자다. 극중 팽헌이 명나라 사신을 접견하는 곳으로 수양을 찾아간 장면에 호위무사들이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일단 관상가 김내경은 당연히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인물로, [[관상]]의 위력은 재미를 위한 과장이 많다. 무엇보다도 [[조선]]은 관상만 보고 [[관료]]를 선발하고, 도둑을 잡을 정도로 미개한 국가가 아니었다. 물론 김내경의 실력이 극중 미제사건을 해결하고 아무도 모르던 관료의 부정을 얼굴만 보고 밝혀내는 등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묘사되기에, 조선을 미개하게 그렸다기보단 김내경의 관상보는 실력이 비현실적으로 뛰어나 발생한 특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김내경의 관상은 작중 틀린 적이 한번도 없는데, 아들, 처남의 경우 그 운명까지 예측했다. 이 정도로 용한 관상쟁이가 실존하면 활용을 안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관상만 보고 관료를 선발한게 아니라 이미 과거를 통해 선발한 관료들이 혹시나 이상한 점이 있을까 싶어 관상을 추가로 본 것이다. 살인자의 경우에도 유력 용의자 세명을 잡아둔 상태에서 단서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자 관상을 보게 한 것. 수양대군의 세력이나 행태도 작중 긴장감을 위해 픽션적 과장이 매우 많이 들어갔다. 우선 수양대군이 첫 등장 장면에 '''[[김종서(조선)|김종서]]에게 대놓고''' 야심을 드러내며 도발하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엄청난 무리수다. 실제 역사에서 문종의 어명(이자 간곡한 부탁)을 받들어 국정을 위임받은, 고지식하고 강직한 '''[[황표정사|고명대신]]''' 김종서와 황보인의 지상과제는 오로지 단 하나, [[단종(조선)|단종]]이 성장하여 친정을 시작하는 그 순간까지 안위를 지키는 것 뿐이었다. 그런 권력자에게 대놓고 의심과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는 건, 어떤 명목으로든 탄핵을 얻어맞아 정치 생명이 끝장나는 '''자살 행위'''로, 왕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수양은 김종서를 비롯한 여러 대신들에게 철저하게 속내를 감추며 매우 능글맞게 대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에 불과해 작중에 묘사된 것은 그보다 더한 과장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어명]]을 받든''' 관헌 앞에 '''사병'''들을 떼거지로 이끌고 나와 위세를 과시하고[* 수양대군의 조부 태종의 사병혁파 이후, 조선 왕조는 전 기간에 걸쳐 '''사병을 보유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역죄'''다. [[김안로]], [[윤원형]], [[안동 김씨]] 가문 등 부와 권력의 끝에 달한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었다 해도 이것만큼은 예외가 없었다. 그나마 조선에서 사병 비슷한 거라도 가진 인물은 [[정여립]] 정도가 있고, 이 역시 활쏘기 동호회를 사병화시키는 편법으로 이뤄낸 것이다.] * '''어명을 받든''' 관헌에게 직접 '''화살'''을 쏘고[* 심지어 화살에 갓끈이 끊어진 이 관헌은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조선)|김승규]]다.][* 어명(교지)를 받든 관헌에게 화살을 쏘는 것은 왕에게 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쏘는 걸 떠나서 단순히 활을 겨누었다는 것 만으로도 수양대군의 정치 생명뿐만 아니라 아예 [[사형|목숨이 끊어질 수 있는]] 행동이다.] * 사병들이 사냥한 호랑이의 시체를 '''김종서의 집 바로 앞에 있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수양의 이 행동은 후반부에 김종서가 자객들 중 한 명이 휘두른 철퇴에 맞아 죽자 수양이 "호랑이 사냥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김종서가 과거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호랑이는 산군이라 불려 이를 잡은 포수는 형식적으로 장 세 대를 맞았으며, 그 가죽을 벗길 때도 제사를 지낸 영물이다.] * 사람들을 잔뜩 모은 다음 '''[[곤룡포]]'''를 입고 '''왕 놀이'''를 한다.[* '''이건 걸리면 즉사다.''' 곤룡포는 단순히 사치스러운 옷 정도가 아니라 국왕이라는 직책과 그 권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대통령 서명을 위조하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다.] 게다가 왕 놀이를 위해 준비한 장소는 다름 아닌 '''궁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다. 물론 이 장면들은 극적인 각색을 위한 과장이지만 실제 역사와는 괴리감이 너무 큰 과장이다. 저 정도면 관상 같은 걸 굳이 안 봐도 '''이 자가 [[역적]]인 것을 몰라보면 장님'''이나 다름없는 짓들 뿐이다. 저 네 가지 행위(사병 보유, 왕명에 대한 능멸, 고명대신 모욕, 왕의 참칭) 하나하나가 실제 역사에선 모두 대역죄에 해당한다. 실제로 이런 행태가 벌어졌다면 그 날로 한양은 발칵 뒤집히고, 당장 수양의 목을 치라는 관헌들과 유생들의 상소문이 산더미처럼 어전에 날아 들 것이다. 이쯤되면 설사 단종이 발벗고 수양을 살려주고 싶어도 살려 줄 방법이 없다. 얌전히 목만 잘리면 정말 운이 좋은 편일 것이고, 보통의 대역죄인처럼 [[능지처참]]이나 [[거열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저런 상황이 가능하려면 후한말의 [[동탁]]이나 [[조조]]처럼, 조정이 완전히 힘을 잃은 상황에서 '난 언제든 황제가 될 수 있지만 명분이 없어서 참는다' 수준의 위세여야 한다. 즉 조선 왕실이 완전히 끝장나기 직전에 처해 강한 힘을 가진 종친이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언제 왕위에 오를지 간을 보는 상황이어야 저게 가능하다. 그런데 조선 역사상 최고의 명군 중 하나인 세종이 붕어한지 고작 십수년만에 그렇게 망가질 리가 만무하다. 당시 조선은 태종이 처가와 사돈 집안에까지 칼춤을 춰가며 만들어낸 왕실의 권위가 굉장히 강한 국가라, 그 위세가 땅에 떨어진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 당시에도 저 정도 지경은 아니었다.] 실제 역사에서 수양은 [[계유정난]]을 정말 조심스럽게 준비했다. 수양과 [[한명회]], [[권람]]이 수 년 간 세간의 눈을 철저히 피해가며 간신히 준비한 것이 고작 건달 몇 십명이었을 정도로, 조선은 사적인 무력을 보유하기 극히 어려운 구조였다.[* 재밌게도 이러한 구조를 만든 것은 극중에서 수양과 마찬가지로 역모의 상으로 언급되는 [[이방원]]이다. 실제로 자신이 사병을 통해 왕위를 얻은 이후, 이방원은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병 혁파에 앞장섰다.] 극중 상황은 실제 역사와 딴판이라 그냥 평행세계라고 보는게 편할 정도다. 실제 역사상의 문종은 동생 수양대군이 가끔 내비치는 야심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고 오히려 동생들을 지극히 챙겨줄 정도로 왕권이 굉장히 탄탄했고, 고명대신들은 군권과 [[의정부]]를 모두 장악했으며, 수양대군의 세력은 가장 미약해 쿠데타 직전에는 특히나 몸을 바싹 낮춰 김종서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나 본작에서의 문종은 이미 수양대군의 야심을 알아 아들이 왕이 되면 위협이 되지 않을까 걱정해 평상시 믿지도 않던 관상가에게 의지할 정도고, 결정적으로 단종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는 내관조차 수양대군의 명을 받을 정도로 조정이 수양대군의 사람으로 가득찬 상태다. 이 때문에 김종서가 수양대군을 필사적으로 견제하다 기습적으로 수양을 치려 했으나 실패한다. 수양대군은 왕위 따위 언제든 집어삼킬 수 있으나 타이밍을 보다 김종서 세력의 작전이 들키자 바로 실행한 것. 즉, 김종서 등 고명대신들의 세력과 수양대군의 세력이 '''실제 역사와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극의 클라이맥스인 계유정난의 전개도 실제와는 좀 다르게 각색되었다. 예를 들어 실제 역사의 김종서는 수양이 습격한 현장에서 머리에 철퇴를 맞았지만 죽지 않고 단지 기절만 했을 뿐, 아들 [[김승규(조선)|김승규]]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희생하고, 워낙 어두운 덕분에 일단 생존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기절했던 김종서가 의식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성용 가마를 타고 도성 밖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다음 날 아침 수양 일파에게 은신처가 발각되어 체포도, 국문도 없이 그 자리에서 칼을 맞아 살해당했다. 실제로는 김종서 못지 않게 중요한 또 다른 고명대신으로 [[황보인]]이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딱 두 장면, 김내경이 문종 앞에서 첫 면접 볼 때 그냥 병풍처럼 서 있는 장면과 마지막에 수양 일파에게 창을 맞아 죽는 장면만 나온다. 대사도 단 한 마디밖에 없다. 게다가 황보인은 성이 황보고 이름이 인인데 작중 내내 보인 대감이라고 불린다.[* 이는 KBS 정통 사극에서도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오류다. 오죽하면 "이 나라가 김씨의 나라입니까, 황씨의 나라입니까!"란 대사가 비판받았을 정도.]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Nz5Myk_3vyY)][youtube(3Tg9a8GVi-U)]}}}|| 첫 등장 시 이정재가 입은 모피 옷은 현실에는 맞지 않지만 감독이 의상팀에 부탁해 제작했는데, 극중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씬은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등장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슬로우모션으로 등장하는 수양대군의 강렬한 인상은 극장에서 관람한 사람들을 압도했다. 실제로 제작진은 이 씬을 찍기 위해서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이는 등 무척 공을 들였다고 한다. 김내경과 팽헌이 한양에 올라와 연홍에게 술상을 대접받고 수많은 기생에게 둘러싸이는 씬이 있는데, 이때 [[가야금]] [[산조]]에 맞추어 [[https://youtu.be/bZEuVB95-O8|춤추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추기에는 먼 미래적인 춤이지만[* 이런 춤을 추는 아이디어는 조정석이 냈다고 한다.] 잘 어울리는 덕에 감독은 흔쾌히 영화에 넣었다고 한다. 참고로 여기서 기생이 연주하는 가야금 산조는 19세기 후반에야 개발된 것이라 역시 시대에 맞지 않다. [[태조(조선)|태조]]의 청포 어진이 [[태종(조선)|태종]] 어진으로 등장하는데, 실제 태종 어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태조 어진의 눈 부분만 수정해 태종 어진으로 대신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어진과 수양대군의 초상화를 비교하는 장면에서 수양대군의 사모와 관복이 조선 후기식이라 [[창작물의 반영 오류|시대에 맞지 않다.]]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092758625_1._%25BC%25BC%25C1%25B6%25BE%25EE%25C1%25F8_%25BE%25C6%25C1%25D6%25B0%25ED%25C8%25AD%25C1%25FA-%25B1%25D9%25C1%25A2.jpg|width=300]] 영화가 개봉한 후 이당 김은호가 그린 '''실제 세조 [[어진]]'''의 이모본이 발견되었는데, 영화의 이정재처럼 날카로운 관상이 아닌 둥글둥글한 인상이다. 다만 어진은 당연히 왕이 된 후에 그려진 초상화이다보니 영화에 나온 시기보다 훨씬 훗날에 그려졌을 것이다. 사실 세조는 비슷하게 조카의 자리를 뺏은 명나라의 [[영락제]]만큼은 아니라도 무골이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충분한 사람이라 젊었을 때는 어진만큼 후덕하지는 않았을 확률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