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관펑 (문단 편집) === 말년 === 1982년 1월 28일, 관펑은 가석방되었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과 하께 홍기 잡지사의 숙소에서 살았다. 그는 정치적으로 끝장났지만 그곳에서는 일반 간부 수준으로 대우받았다. 1988년 전기작가 예융례(家葉永)가 관펑과 인터뷰했다. 이때 관펑은 "현재 나는 창문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모른 채 책벌레가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관펑은 말년에 철학에 관련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만 그는 문화대혁명에 대해 "안 보고, 말하지 않고, 쓰지 않고, 듣지 않는다."는 '사불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자신 앞에서 문화대혁명을 언급하는 자는 비롯 친한 사람이라도 외면했다. 또한 그를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전기작가 예융례는 말년의 관펑이 간부 모자를 쓰고, 중산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매일 세 끼의 평상 요리를 하며, 노자, 장자, 공자 연구에 몰두했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옌창구이(閻長貴)는 관펑이 '사불원칙'을 고수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관펑은 문화대혁명의 추억과 연구에 관심이 많고 이 방면의 책을 탐독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1980년대에 문화대혁명을 언급하자, 관펑은 "그들이 이겼다!"고 대답했다. 관펑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비롯 실패했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고, 적어도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마오쩌둥 주석이 조직을 지배하지 못한 큰 결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1986년에 자유의 몸이 된 관펑은 치번위와 여러 차례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중국 사상사에 관한 책을 썼다. 그후에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거나 철학 연구에 전념하던 그는 2005년 6월 7일 밤 21시 40분에 베이징에서 향년 86세의 나이로 병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