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관화 (문단 편집) == 특징 == [youtube(lKOpjRElEEM)] 류원(리우웬)이 말하는 관화 [youtube(OIlJ_UI0u-I)] [[겨울왕국]]의 <[[Love Is an Open Door]]> 관화 더빙판 <爱的门打开了> [[객가어]]나 [[광동어]]에 비하면 [[중고한어]] 발음이 비교적 덜 남아있다고 한다. 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중세 한국어]]의 흔적이 [[경기 방언]]([[서울 방언]])보다 [[서북 방언]], [[제주 방언]], [[서남 방언]] 등에 더 많이 남아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원래 언어는 다양한 (지역)언어와 접촉할수록 더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관화는 발음 변화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쉽게 위키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대중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가지는 사항과 관련된 문서일수록 열람이 잦고 편집 횟수가 많아져서 문서 내용이 더 많이 변할 것이다.][* [[https://i.imgur.com/qvTDkZn.png|한서를 바탕으로 만든 기원후 2년경 중국 대륙 인구 밀도 지도.png]][[https://www.reddit.com/user/Fornadan/|출처]]] 남부의 방언을 쓰는 사람들 중에서는 "중세의 발음을 더 보존하고 있으니 우리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세 언어가 태초의 모습도 아닐뿐더러, 언어는 빠르든 느리든 계속 변하고 이는 관화나 남부 방언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이산맥~남령(난링)산맥 이남으로 이주한 한족은 토착민과 교류하고 통혼하며 유전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고, 사회문화적 주류는 여전히 한족이었기에 언어적 주도권은 유지했지만, 애초에 북중국과는 환경이 달라졌기에 현지어나 문화의 영향을 받는 등의 변화가 없을 수는 없었다. 이주해 온 한족이 지역 내에서 언어 권력을 놓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변화가 느렸을 뿐이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0409/htm_2004090818291440004300-001.GIF|#]] 12세기 [[북송]]에서 초기 관화가 형성되면서부터 입성음이 사라졌고, [[성조]]가 만기 중고한어의 8성에서 4성으로 줄었으며, 전탁음이 거의 사라졌고, 二의 발음이 er(얼)로 변형되었다. 사실 이처럼 입성이 단일화된 후에 사라지는 현상은 [[오어]], [[민어(언어)|민어]] 등의 다른 방언에서도 발견되며, 북방음(관화)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이미 상고음([[상고한어]])에서 중고음([[중고한어]])으로 바뀌는 시대에 어말의 성문파열음, 그리고 /s/로 끝나는 운미(-s, -ps, -ts, -ks, -ʔs 등)가 각각 상성과 거성을 남기며 사라지는 과정이 있었다. 19세기 이후 관화가 현대음으로 바뀌면서 [[구개음화]] 현상이 크게 일어났다. [[강희자전]]에서 당운(唐韻)이 호각절(湖覺切)로 나와있는 '배울 학([[學]])'의 경우 원래 원나라 후기부터 청나라 초중기까지의 근세 관화에서는 '''hio(효)'''정도로 발음했었으나, 청나라 후기 이후 현대 관화에서 성모 차원에서는 gi [ki](기~끼), ki [kʰi] (키), hi [xi] (히)음이 각각 현대음으로 바뀌면서 ji [t͡ɕi] (지~찌), qi [t͡ɕʰi] (치), xi [ɕi] (시)로 [[구개음화]]되었고, 운모 차원에서는 i가 원순화되어 ü로, o는 비원순화되어 e로 바뀜으로써 '''xue(쉐)'''로 발음이 변형되었다. hok6(광동어), ho̍k(객가어), hă(민북어), hŏk(민동어), ha̍k(민남어) 등으로 발음하는 현대 남방 방언과 비교하면 현대 관화는 구개음화 현상이 크게 진행되었고 입성을 비롯한 받침음이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사람 인([[人]])'도 청나라 초중기 근세 관화에서는 yin(인)으로 발음했었으나, 청나라 후기 이후 현대 관화에서는 ren(런)으로 발음이 바뀌었다. 근세 관화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노걸대언해]]를 보아도 갈 거([[去]])자는 '''큐''', 풀 해([[解]])자는 '''계'''로 발음하도록 표기되어 있었으나, 좀 더 후대에 간행된 중간노걸대언해(重刊老乞大諺解)에서는 去의 발음이 '''ᄎᆔ'''로 표기되었다. 현재는 구개음화로 인하여 각각 '''qu(취)''', '''jie(제~쩨)'''로 발음하고 있다. [[베이징]] [[자금성]]에 [[청나라]] 때부터 만한병용문으로 걸려 있는 판액이나 여러 지명의 [[우정식 병음]]과 [[한어병음]]에서의 표기법 차이, 한화한 만주족 인물들의 인명 표기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청더시|열하]](熱河)[* 연암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의 그 열하 맞다. 열하일기 자체가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인데, 박지원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궁인 [[피서산장]]이 위치한 열하(현 [[허베이성]] [[청더시]])였기 때문에 '열하일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의 경우 19세기 발음에 기반하여 제정된 우정식 병음에서는 로마자로 __J__ehol이라 표기하나 현대 한어병음에서는 __R__ehe라고 표기한다. 19세기 전반에 태어나 19세기 말까지 활동하고 사망한 [[아이신기오로 이힌|이힌]]의 경우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으로는 I-hsin, 현대 한어병음으로는 Yixin이라 표기하지만 [[만주어]]로는 ᡳ ᡥᡳᠨ(I Hin)이라 표기하는데, 19세기 후반부터 관화의 구개음화가 점차 진행되던 시절의 이름이므로 특기할만한 사항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산둥성]] 동부 지역 관화는 [[구개음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아서 청나라 후기 이전의 근세 관화음을 상당히 보존했다. 그래서 사람(人)을 ren(런)이 아닌 yin(인)이라고 발음하고 아홉(九)을 jiu(주~쭈)가 아닌 giu(규~뀨)라고 발음한다. 한국의 [[화교]]들은 대부분 한반도와 가까운 산동반도 및 산동성 출신이라서 [[한국식 중화 요리]] 이름에서도 근세 관화음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라조기]], [[깐풍기]], [[유린기]], [[기스면]] 등의 '기'는 닭([[鷄]], 계)을 산동성 동부 지역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표준중국어로는 '지'(jī)라고 읽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