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개토대왕 (문단 편집) === 유사역사학 === 민족을 숭배하는 한국의 유사역사학과 엮이기 좋은 소재이다 보니 광개토대왕과 관련된 유사역사학적인 주장들도 많다. 광개토대왕이 젊은 나이로 죽고 나서 [[훈족]]에 [[아틸라]]가 등장했기 때문에 광개토대왕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아틸라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틸라는 선대의 계보가 명확해서 당연히 말이 안되는 소리다. 인지도는 후달리지만 한국판 [[미나모토 요시츠네]] = [[칭기즈 칸]] 설이랄까... 〈광개토대왕 비문〉에 등장하는 '식신토곡'이라는 세력명에서 토곡만 떼와서 토곡이 [[토욕혼]]과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광개토대왕이 토욕혼을 정벌했다는 주장도 있다. '식신토곡'이라는 말은 '식신땅의 곡'이라는 의미지 토곡 자체가 어떤 세력명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가 아니다. 더구나 당시 토욕혼은 '백란'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다만 어느 국가가 자국 명칭을 바꾸어도 외국에선 계속 예전 식으로 부르는 경우는 흔하다. 한국의 국명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지 600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코리아(고려)'라고 알려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식신토곡=토욕혼 설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논점은 아니다.] 토욕혼이 고구려의 원수인 선비 모용씨의 나라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그럴싸하기도 한데 환빠들은 토곡 = 토욕혼 주장을 할때 이런 근거는 들지 않는다. 그런데 토욕혼은 오늘날의 [[칭하이성]]에 위치해 있었는데 어떻게 정벌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지... 398년 [[북위]]의 수도 업에 고구려인 46만명과 기술자 10만명이 가득차서 수도를 평성으로 옮겼는데 사실은 고구려가 북위의 수도 업을 함락해서 북위가 불가피하게 수도를 평성으로 옮긴 거라고 해석하는 주장도 있다. 사료에서 확인되는 고구려와 북위의 최초 접촉은 [[장수왕]] 때다. 둘다 공동의 적으로 후연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굳이 동맹을 맺을 만큼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지도 않았고(서로 눈치보면서 후연을 공격하는 수준) 국경이 닿아있지 않은 관계로 직접적으로 접촉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강원도]] [[고성군(강원도)|고성군]]에서는 [[화진포]] 앞바다의 [[금구도]]가 광개토대왕릉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는 한 유사역사가의 주장을 고성군이 멋대로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https://cafe.naver.com/booheong/208842|#]] [[https://cafe.naver.com/booheong/20885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