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개토대왕/생애 (문단 편집) == 즉위 이전: 주위 정세와 성장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391map.psd.jpg|width=100%]]}}}|| || {{{#000000 광개토태왕 즉위시의 고구려 주변 국가[* 동부여 같은 경우에는 위치가 통설에 따른 것이며, 다소 이견이 있다.] }}} || 고담덕이 성장하던 소년 시절의 고구려는 내적으로 [[고국원왕]] 시대에 손실되었던 군사력이 다시 강화되고, [[소수림왕]] 시대에 이루어진 통치 체제의 정비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밖으로는 [[영 좋지 않다|영 좋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서쪽인 요동에는 할아버지 [[고국원왕]] 시절 환도성을 털어간 전적이 있었던 [[전연|선비족의 연나라]]([[전연]])가 [[저족]]의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한테 잠깐 멸망했다가 다시 일어나([[후연]]) [[요동]]과 화북을 휩쓸었고, 남쪽으로는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한성[[백제]]가 여전히 한반도의 패권을 놓지 않고 있었다. 서북으로는 [[거란]]이라 불리기 시작한 일군의 유목 부족이, 동북으로는 동부여가 자리 잡아 지속적으로 배후의 위협이 되었다. 그리고 [[고달가]]의 정벌 이래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었던 [[숙신]]도 이즈음에는 고구려의 영향력이 약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구려 외부의 불안은 내부의 발전과 맞물리면서 고구려의 대외적인 확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백부 소수림왕은 남쪽의 백제 방면으로, 부친 고국양왕은 서쪽의 후연 방면으로 각기 진출을 시도했지만 그다지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고, 성과도 그리 신통치 않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고담덕은 그 나름대로 고구려의 상황을 분석하고, 여기에 청소년기의 도전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고구려라는 제국의 현실에 알맞은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해 《[[삼국사기]]》는 >生而雄偉, 有倜儻之志. >나면서 웅위롭고 남달리 높은 뜻이 있었다. 는 의미심장한 평가를 전하고 있다.[* 이 문구의 해석으로는 '나면서부터 기개가 웅대하고 활달한 뜻이 있었다.(네이트 한국학 《삼국사기》)'거나 '태어나서 씩씩하고 뛰어나며 대범한 뜻이 있었다.(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거나 '웅위하고 뛰어난 뜻이 있었다.(한국고전종합 DB 《동사강목》)'거나 '태어나면서부터 체격이 크고, 생각이 대범하였다.(허성도 번역 《삼국사기》)'거나 '어려서부터 체격이 웅위하고 뜻이 고상하였다.([[이병도]] 번역 《삼국사기》)'는 등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어차피 모두 의미는 비슷하다.] 서기 384년 11월, 고담덕의 큰아버지 [[소수림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승하하자 왕의 동생이자 고담덕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이 즉위했다. 이에 따라 고담덕은 그로부터 2년 뒤인 고국양왕 3년에 12세의 나이로 태자가 되었다. 그리고 6년 뒤인 서기 391년 5월, 고국양왕이 죽자 고담덕은 부왕을 계승해서 18세의 어린 나이로 고구려의 새로운 태왕이 되었다. 광개토대왕과 그의 전쟁의 시작이었다.[*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해를 391년으로 보고, 《삼국사기》에 고국양왕 말년에 벌어진 것으로 기록된 신라의 고구려 종속화, 불교의 권장, 종묘와 사직의 수리 사건을 모두 광개토대왕 원년의 것으로 넣으려는 주장이 오늘날 대세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내용은 상위 문서의 '[[광개토대왕#s-7.3.1|기년 수정론]]' 단락을 참조할 때 그다지 성과도 없거니와 오히려 연대가 꼬이는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삼국사기》와 〈광개토대왕릉비〉를 모두 최대한 존중하여 이하 연대는 모두 광개토대왕 X년(《삼국사기》) / 영락 X년(〈광개토왕릉비〉)으로 표기하겠다.][* 1차 사료인 능비를 토대로 복원된 그의 치세기(391년~412년)는 《삼국사기》의 연호로 기록된 치세기(392년~413년)에서 계속 1년씩 차이가 난다. 그러나 학계의 중론은 세는 나이 기준을 이용해 능비를 토대로 복원된 치세기가 옳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